陞階納陛 弁轉疑星
【本文】
陞階納陛 弁轉疑星 승계납폐 변전의성
계단에 올라가서 납폐 통해 들어가니
흔들리는 관장식이 반짝이는 별 같구나.
【훈음(訓音)】
陞 오를 승 階 섬돌 계 納 드릴 납 陛 섬돌 폐
弁 고깔 변 轉 구를 전 疑 의심 의 星 별 성
【해설(解說)】
지난 장에서는 천자가 머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에서 천자나 황후 등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거나 제후 및 군신들이 전공(戰功)을 세웠거나 축하할 일이 있으면 천자가 제후 및 군신들에게 연회(宴會)를 베풀고 음악을 연주하여 군신간에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번 장에서는 웅장하고 화련한 궁전에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밖의 층계를 오르고 안의 납폐(納陛)를 통해 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휘황찬란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승계납폐(陞階納陛) 계단을 올라가 납폐 통해 들어가니
승계납폐(陞階納陛)란 무엇일까요? 새로운 글자의 자원(字源)을 하나하나 알아본 후에 새겨보겠습니다.
승(陞)은 부(阝.阜) + 토(土) + 승(升)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승(升)'은 '오르다'의 뜻입니다. 흙으로 쌓인 언덕을 '오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계(階)는 부(阝.阜) + 개(皆)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개(皆)'는 '나란히 늘어서다'의 뜻이니 계(階)는 '나란히 늘어선 층층대'의 뜻을 나타냅니다.
납(納)은 사(糸) + 내(內)의 형성자(形聲字)로 '내(內)'는 '들이다'의 뜻입니다. 물에 넣은 실의 뜻을 나타내었으나, 흔히 '들이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폐(陛)는 부(阝.阜) + 비ㆍ폐(坒)의 형성자(形聲字)로, '비ㆍ폐(坒)'는 쌓아놓은 흙이 연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부(阜)'는 '층계'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나란히 연하여 있는 '섬돌'의 뜻을 나타내며, 특히 '궁전의 층계'의 뜻을 나타냅니다.
승계(陞階)란 계단을 오른다는 뜻입니다. 계(階)는 궁전 앞뜰에서 천자가 있는 궁전으로 올라가는 섬돌입니다. 이는 신하들이 이용하는 섬돌 즉 계단입니다.
납폐(納陛)란 궁전(宮殿) 안에 천자나 대신들이 출입하는 덮개가 있는 계단을 말합니다.
폐(陛)는 궁전 안에 있는 계단으로 천자만이 오를 수 있는 섬돌입니다. 천자의 계단입니다. 천자의 계단은 아홉 계단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구(九)란 최상(最上)의 수입니다. 구(九)는 가장 좋고 가장 높은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층계도 이에 맞게 아홉 계단을 만든 것입니다. 신하가 천자를 부를 때 폐하(陛下)라고 하는 것은 천자는 폐(陛) 밑에서 우러러 뵐 분이라는 뜻입니다. 신하들은 이 폐(陛) 밑에서 천자를 모시는 사람입니다. 폐하는 섬돌 밑에서 신하가 천자를 뵌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납폐(納陛)라는 말은 대궐의 축대를 파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비밀 출입 계단입니다. 이는 천자만이 오르는 섬돌이지만 옛날 제왕이 특별한 공훈이 있는 제후나 대신에게 하사(下賜)하는 아홉 가지 은전(恩典) 중의 하나가 납폐(納陛)사용의 허용입니다. 특별한 은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홉 가지 은전을 구석(九錫)이라 하는데, 거마(車馬)ㆍ의복(衣服)ㆍ악기(樂器)ㆍ주호(朱戶 대문을 붉은 색으로 칠함)ㆍ납폐(納陛)ㆍ호분(虎賁 종자(從者) 300명)ㆍ궁시(弓矢)ㆍ부월(斧鉞)ㆍ거창(秬鬯 기장과 향초로 빚은 울창주)을 말합니다. 이 구석의 다섯 번째가 납폐의 사용인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와 승계납폐(陞階納陛)란 제후(諸侯)와 공경대부(公卿大夫) 즉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한 후 계단을 올라 납폐(納陛)를 통해 궁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들의 거동은 사뭇 위엄이 있고 의젓했을 것입니다.
변전의성(弁轉疑星) 흔들리는 관장식이 반짝이는 별 같구나.
변(弁)은 상형자(象形字)로, 양손으로 고깔을 쓰는 형상을 본떠 '고깔'의 뜻을 나타냅니다.
전(轉)은 거(車) +전(專)의 형성자(形聲字)로, '전(專)'은 실을 실패에 감다의 뜻입니다. 여기에 수레(車)가 더해져 수레가 '구르다, 돌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의(疑)는 상형자(象形字)로, <갑골문(甲骨文)>에는 사람이 고개를 쳐들고 생각하며 서있는 모양을 상형하였고, 혹은 사람이 갈림길을 만나 지팡이를 세워 놓고 생각을 굴리면서 서 있는 모양을 상형하였습니다. <금문(金文)>에는 이 갑골문 ''에 척(彳) + 지(止) + 우(牛)와 같이 '우(牛)가 붙어 음(音)을 나타냅니다. 금뜬 소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의심하고 망설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성(星)은 정(晶) + 생(生)의 형성자(形聲字)로, 정(晶)은 별을 본뜬 것이며, 생(生)은 '청(淸)'과 통하여, '맑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맑은 빛의 '별'을 뜻합니다.
변전(弁轉)은 관모(官帽)가 흔들리는 모양입니다. 변(弁)은 고깔 변이라 하는데, 고깔이란 관모(官帽)를 뜻합니다. 변(弁)은 주(周)나라의 관모(官帽)였습니다.
관모(官帽. 冠)에는 면(冕)과 변(弁)이 있는데 대부(大夫)이상은 조회(朝會) 때나 제례(祭禮)에 주옥(珠玉)이 달린 면류관(冕旒冠)이나 변(弁)을 썼고, 사(士)는 면류관은 쓰지 못하고 변(弁)을 썼다고 합니다.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쓴 관모 즉 변(弁)은 녹피(鹿皮 사슴가죽)으로 만드는데 솔기에 주옥(珠玉)을 달아 장식하였는데 이를 양(梁)이라 했습니다. 이 양(梁)은 품계에 따라 삼량(三梁)ㆍ오량(五梁)ㆍ칠량(七梁) 등으로 구분했습니다.
의성(疑星)은 '별이 아닌가 의심된다'는 뜻입니다. 즉 별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변전의성(弁轉疑星)은 제후(諸侯)나 공경대부(公卿大夫) 등이 의관을 정제하고 섬돌을 오르고 납폐를 통해 궁 안으로 들어 감에 위의(威儀)를 갖추고 의젓하게 걸어 갈 때 관모가 살랑살랑 흔들리는데 관모의 주옥들이 마치 별처럼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장관일까요?
《시경(詩經)》『위풍편(衛風篇)』「기욱(淇奧)」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瞻彼淇奧 첨피기욱 기수(淇水)의 물굽이 바라보나니
綠竹猗猗 녹죽의의 푸르른 대나무가 우거졌도다.
有匪君子 유비군자 아름답고 훌륭하신 우리 무공(武公)님
如切如磋 여절여차 구슬을 깎아서 잘 다듬은 듯
如琢如磨 여탁여마 옥돌을 쪼고 갈 듯 탁마하더니
瑟兮僩兮 슬혜한혜 엄숙하고 위엄 있고 너그럽도다.
赫兮咺兮 혁혜훤혜 마음 덕이 빛나고 의젓하도다.
有匪君子 유비군자 아름답고 훌륭하신 우리 무공님
終不可諼兮 종불가훤혜 언제라도 끝내 잊지 못하겠구나.
瞻彼淇奧 첨피기욱 기수의 물굽이 바라보나니
綠竹靑靑 녹죽청청 푸르른 대나무가 무성하여라.
有匪君子 유비군자 아름답고 훌륭하신 우리 무공님
充耳琇瑩 충이수영 귀걸이는 옥돌로 만들어졌고
會弁如星 회변여성 관모의 구슬 장식 별과 같아라.
瑟兮僩兮 슬혜한혜 엄숙하고 위엄 있고 너그런 모습
赫兮咺兮 혁혜훤혜 환하고 의젓하기 짝이 없구나.
有匪君子 유비군자 아름답고 어여쁘신 우리 무공님
終不可諼兮 종불가훤혜 언제라도 끝내 잊지 못하겠구나.
瞻彼淇奧 첨피기욱 기수의 물굽이 바라보나니
綠竹如簀 녹죽여책 푸르른 대나무가 울창하구나.
有匪君子 유비군자 아름답고 어여쁘신 우리 무공님
如金如錫 여금여석 금처럼 주석처럼 덕을 지니니
如圭如璧 여규여벽 규옥처럼 벽옥처럼 빛이 난다네.
寬兮綽兮 관혜작혜 너그럽고 의젓한 모습으로서
猗重較兮 의중각혜 수렛대에 기대어 서서 계시네.
善戱謔兮 선희학혜 우스운 농담 말씀 잘 하시지만
不爲虐兮 불위학혜 사납고 가혹한 일 하지 않았네.
이 시는 위(衛)나라 무공(武公)을 찬탄한 시인데 여기에 관모의 구슬장식이 별처럼 반짝인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무공은 주왕실이 동천(東遷)할 때 공을 세웠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천자문의 변전의성(弁轉疑星)은 《시경》의 이 대목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천자가 거하는 정전(正殿)으로 제후(諸侯)나 공경대부(公卿大夫) 등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이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위의(威儀)를 갖추고 정전 밖의 섬돌에 오르고 다시 납폐를 통해 정전에 들 때 의젓하게 걸음에 흔들리는 관모의 주옥들이 별이 아닌가 할 정도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풍모는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