戶封八縣 家給千兵
【本文】
戶封八縣 家給千兵 호봉팔현 가급천병
공신에겐 民戶로 여덟 고을 봉해 주고
그들 집엔 家兵으로 일천 명을 주었도다.
【훈음(訓音)】
戶 지게 호 封 봉할 봉 八 여덟 팔 縣 고을 현
家 집 가 給 줄 급 千 일천 천 兵 군사 병
【해설(解說)】
지난 장에서는 수도의 중앙정부에는 기라성 같은 장상(將相)이 늘어서서 천자(天子)를 보필하고 있고, 도성의 길가에는 삼공구경(三公九卿),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의 저택이 즐비함을 보여 도성이 번성함을 묘사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제후(諸侯), 공신(功臣)들에게 나누어 준 봉토(封土)와 가병(家兵)을 준 사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호봉팔현(戶封八縣) 공신(功臣)에겐 민호(民戶)로 여덟 고을 봉해 주고
호(戶)는 상형자(象形字)로 한쪽만 열리는 문짝의 상형(象形)으로 '문'의 뜻을 나타냅니다. '지게문'을 말합니다. 문지단비자왈호(門之單扉者曰戶)라 했으니, 호(戶)는 문짝이 외짝인 것을 말합니다. 문(門)은 두 짝이지요. 일비왈호(一扉曰戶)요, 양비왈문(兩扉曰門)입니다.
문에는 문(門)과 호(戶)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당지구왈문(堂之口曰門)이라 했으니, 집의 출입구를 문(門)이라 했습니다. 대문(大門)을 말합니다. 또 실지구왈호(室之口曰戶)라 하였으니, 방의 출입구를 호(戶)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일단 들어와서 있는 문이 호(戶)입니다. 그래서 외왈문(外曰門)이요, 내왈호(內曰戶)입니다. 문(門)과 호(戶)를 합하여 '문호(門戶)'라 하는데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말합니다. 이 의미가 확대되어 외부와 교류하기 위한 통로나 수단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문호를 개방하다.'와 같이 말씀입니다.
또, 호(戶)는 집에 있는 것이므로, '집, 가옥'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봉(封)은 지(之) + 토(土) + 촌(寸)의 회의자(會意字)로, <갑골문(甲骨文)>은 우거진 식물을 본뜬 모양인데, <금문(金文)>부터는 지상(地上)[土]에 식물[之의 本字]을 손으로 심는 모양[寸]을 나타내는 자체(字體)로 되었습니다. 경계(境界)에 식물을 심는 뜻에서, 경계, 경계를 정하여 영토를 주어 제후(諸侯)로 삼음의 뜻을 나타냅니다.
팔(八)은 상형자(象形字)로, 둘로 나누어져 있는 모양을 본떠, '나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것을 가차(假借)하여, '여덟'의 뜻으로 씁니다.
팔(八)은 팔(捌)과 동자(同字)입니다. 팔(捌)은 '깨뜨릴 팔'이라고도 하는데 '여덟 팔'로도 씁니다. 금전(金錢)을 기록할 때는, 글씨를 고쳐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팔(八) 대신 팔(捌)을 쓰기도 합니다.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 가면 부처님의 일대기 중 중요한 여덟 장면을 그린 팔상도(八相圖)를 모신 전각인 팔상전이 있습니다. 이 팔상전의 편액(扁額)을 보면 팔상전(捌相殿)이라 되어 있음을 봅니다. 이처럼 八과 捌은 통용하고 있습니다.
현(縣)은 <금문(金文)>에서는, 목(木) + 사(糸) + 목(目)의 회의자(會意字)로, 나무에서 머리 또는 끈으로 목을 건 모양에서, '걸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견(畎)'과 통하여, 경작지의 뜻에서, 다시 지방 행정 구획(行政區劃)의 하나를 나타내는 군현(郡縣)의 '현(縣)'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봉팔현(戶封八縣)에서 호봉(戶封)이란 '민호(民戶)를 봉토(封土)로 주었다'는 뜻입니다. 팔현(八縣)이란 '여덟 고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호봉팔현(戶封八縣)이란 여덟 고을의 미호를 주었다는 이야깁니다. 누구에게 주었을까요? 공신에게 준 것이지요.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죽자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졌습니다. 호해(胡亥)가 황제로 등극했지만 어리석어 환관 조고(趙高)가 승상(丞相)에 오르며 정치를 농단했습니다.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이지요. 이를 계기로 각처의 영웅호걸들이 일어나 천하를 쟁패(爭覇)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니 통일 진나라는 다시 사분오열(四分五裂)로 나뉘고 멸망하고 말았는데, 영웅호걸 중 걸출한 두 영웅이 있어 자웅(雌雄)을 겨뤘는데 저 유명한 초(楚)나라의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지요. 초한(楚漢)의 전쟁은 대단히 치열했지만 결국 유방이 승리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BC 202년 다시 천하를 통일한 한의 고조(高祖) 유방은 법령을 제정하고 정비하면서 공신들에게 여덟 고을의 민호를 나누어 주어 거기에서 나오는 세를 받도록 하여 제후국(諸侯國)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호봉팔현(戶封八縣)입니다.
가급천병(家給千兵) 그들 집엔 家兵으로 일천 명을 주었도다.
가(家)는 면(宀) + 시(豕)의 회의자(會意字)로, 면(宀)은 '집'의 뜻이고, 시(豕)는 '돼지'의 뜻입니다. 돼지 따위의 희생(犧牲)을 올리는 집 안의 신성한 곳의 뜻에서, 그곳을 중심으로 하는 '집'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돼지[豕]의 집(宀)이란 뜻으로,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는다는 데서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집'을 나타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가거야(家居也)라 했으니 가(家)는 '사람이 사는 집'입니다.
급(給)은 사(糸) + 합(合)의 형성자(形聲字)로, 실을 자아 뽑을 때, 끊어지면 곧 이어대다의 뜻에서, '더하다, 보태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급상족야(給相足也)라 했으니 남의 부족한 것을 보태준다는 의미입니다.
천(千)은 인(人) + 일(一)의 회의자(會意字)로, 인(人)은 '많은 사람'의 뜻이며, 일(一)은 '하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일천의 뜻을 나타냅니다.
천(千)과 천(仟)은 동자(同字)입니다. 또 천(阡)도 동자(同字)입니다. 금전(金錢)의 기재(記載)에는 천(千) 대신에 천(仟)이나 천(阡)을 씁니다. 이는 혹시 모르는 글자의 개변(改變)을 막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은행에서 돈을 거래할 때 전표를 이렇게 씁니다.
참고로 글자의 개변을 막기 위해서 一~十까지의 숫자는 壹, 貳, 參, 四, 五,,.. 捌, 九, 拾. 이렇게 씁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묘하게 조작하려는 무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
병(兵)은 공(廾) + 근(斤)의 회의자(會意字)로, 공(廾)은 '양손'의 상형(象形)이고, 근(斤)은 '도끼'의 상형입니다. 양손으로 쥐는 자귀의 뜻에서 '무기'를 뜻합니다. 이 무기 잡고 싸우는 사람이 바로 군사지요. 병졸(兵卒)을 말합니다.
가급천병(家給千兵)에서 가(家)는 '공신(功臣)의 집'을 말합니다. 급(給)은 '지급했다'는 뜻이고, 천병(千兵)은 '군사 일천 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가급천병(家給千兵)이란 제후로 삼은 공신들의 집에는 각각 군사 1,000명씩을 나누어 주어 그 병력으로 하여금 그 집을 호위하도록 했다는 이야깁니다. 혹은 덕(德)이 있는 자에게도 일천 명의 가병(家兵)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번 장에서는 제후(諸侯), 공신(功臣)들을 어떻게 예우했는가 하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황제는 이들에게 영지(領地)와 군사(軍士)를 주어 황제를 대신하여 백성들을 잘 다스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볼까 합니다.
한(漢)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통일을 이룬 후, 일등공신(一等功臣)들에게 이렇게 호봉팔현(戶封八縣)하고 가급천병(家給千兵)하여 공신들을 대우했습니다. 한(漢)은 황제국(皇帝國)이라 제후(諸侯)들은 왕(王)이라 칭했습니다. 제후왕(諸侯王)들은 대개 황족(皇族)들이 맡는데, 고조는 황족(皇族)이 아닌 일등공신들로 하여금 제후왕(諸侯王)을 일곱 명이나 봉했습니다. 이들을 일러 이성왕(異姓王)이라 합니다. 이들은 초왕(楚王) 한신(韓信), 양왕(梁王) 팽월(彭越), 회남왕(淮南王) 경포(黥布), 조왕(趙王) 장오(張敖), 한왕(韓王) 한신(韓信. 이 사람은 초왕의 한신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저 유명한 회음후 한신은 초왕 한신입니다.), 장사왕(長沙王) 오예(吳芮), 연왕(燕王) 장도(臧荼)입니다.
이들은 한(漢)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이들을 크게 예우해 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아직 권력 기반이 공고하지 못하고 불안정하던 때라 유방은 이들을 크게 위무(慰撫)하고 예우하였습니다. 그래서 제후왕으로 봉하여 그들을 안심시켰던 것입니다.
점차 기반이 안정되어 가자 유방은 이들의 세력이 커가는 것을 속으로 두려워 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돌변하여 자신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두 반란죄(返亂罪)를 씌워서 제거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었던 것입니다. 사냥을 마친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고 하였지요. 이 중에 세력이 미미했던 장사왕(長沙王) 오예(吳芮)만이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이성왕(異姓王)을 제거하고서는 모두 이 자리를 자신의 아들들로 앉혔으니 권력이란 참으로 몰인정하고 무상한 것입니다. 옛말에 환란은 함께 나눌 수 있지만 영화는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지요. 명나라를 일으킨 주원장(朱元璋)도 환란을 같이 했던 공신들을 처음에 모두 포상했다가 남김없이 제거했지요. 어디 그 뿐인가요? 권력 주변에는 비일비재합니다. 권력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호봉팔현(戶封八縣) 가급천병(家給千兵)의 이야기 속에는 이러한 사실도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세력을 얻었다고 유세를 부리고 가혹한 정치로 백성을 핍박하면 언제 어떻게 상황은 변할지 모르는 것이니 언제나 바른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신중히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