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索居閑處 沈默寂寥
【本文】 索居閑處 沈默寂寥 삭거한처 침묵적요
외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 사니
말없이 잠잠하여 편안하고 고요하다.
【訓音】
索 떨어질 삭 居 살 거 閑 한가할 한 處 곳 처
沈 잠길 침 默 잠잠할 묵 寂 고요할 적 寥 쓸쓸할 료
【解說】
제12장에서는 번거로운 세속을 떠나 한가한 곳에서 고요히 머물며, 옛 사람이 논한 도를 구하고 찾으면서 속된 생각 털어내고 자재로이 소요(逍遙)하니 온갖 번거로움이 사라져서, 근심은 물러가고 환희가 찾아오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한거閑居)ㆍ은일(隱逸)의 즐거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삭거한처 침묵적요(索居閑處 沈默寂寥)
외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 사니 말없이 잠잠하여 편안하고 고요하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고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삭(索) 혹은 색(索)은 금문(金文)은 면(宀) + 사(糸) + 공(廾)의 회의자(會意字)로, '면(宀)'은 '집'의 뜻이고, '사(糸)'는 '실'의 뜻이며, '공(廾)'은 '두 손을 본뜬 모양'입니다. 집 안에서 풀의 잎이나 줄기를 재료로 새끼를 꼬다, '새끼'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새끼를 끌어당기듯 하여, '구하다, 찾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索을 '동아줄 삭, 새끼 꼴 삭, 떨어질 삭, 홀로 삭'이라 하는가 하면, '찾을 색, 바랄 색'이라 합니다.
거(居)는 시(尸) + 고(古)의 형성자(形聲字)로, '시(尸)'는 걸터앉은 사람을 본뜬 모양이고, '고(古)'는 '고(固)'와 통하여, '단단히 ~하다'의 뜻입니다. 잘 앉다의 뜻에서, '있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거(居)는 거준야(居蹲也)라 했으니 '웅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살다, 있다, 곳'의 뜻을 나타냅니다.
한(閑)은 문(門) + 목(木)의 회의자(會意字)로, 문 사이에 나무를 놓고 다른 데서부터의 침입을 막는 칸막이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한(閒)'과 통하여 '한가한 틈, 한가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처(處)는 처(処) + 호(虍)의 형성자(形聲字)로, '호(虍)'는 '거(居)'와 통하여 '있다'는 뜻이고, '처(処)'는 '걸상에 걸터 앉다, 있다'의 뜻입니다. 원래 '처(処)'가 처(處)의 본자(本字)인데 후세에 와서는 속자(俗字)로 간주됩니다.
침(沈)은 수(水) + 음(冘)의 형성자(形聲字)로, '음(冘)'은 사람이 머리 밑에 괴는 베개의 상형(象形)으로, 머리를 받쳐 안정시킴의 뜻을 나타냅니다. '물속에 가라앉음'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침(沈)은 침몰야(沈沒也)라 했으니 '잠기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묵(默)은 견(犬) + 흑(黑)의 형성자(形聲字)로, '흑(黑)'은 '검다, 움직임이 없다'의입니다. 개[犬]가 입을 다물고 사람을 따라가다의 뜻에서, '입을 다물다. 말없이 잠잠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묵(默)은 묵불어야(默不語也)라 했으니 '말이 없다'는 뜻입니다.
적(寂)은 전문(篆文)은 면(宀) + 숙(尗)의 형성자(形聲字)로, '숙(尗)'은 '마음 아파하다'의 뜻입니다. '집 안이 쓸쓸하다. 조용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료(寥)는 면(宀) + 료(翏)의 형성자(形聲字)로, '쓸쓸하다, 적막하다'는 뜻입니다.
삭거한처(索居閑處)는 외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 산다는 말입니다.
삭거(索居)는 '친구와 사귀지 않고 떨어져 있음. 쓸쓸하게 홀로 있음'을 뜻합니다. 한처(閑處)는 '한가한 곳, 한적한 곳'을 말합니다.
삭거(索居)라는 말은 《예기(禮記)》『단궁(檀弓) 上』에 나옵니다.
「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오리군이삭거 역이구의)」
"내가 벗들과 떠나 흩어져서 외로이 산 것이 이미 오래 되었다."
이와 같이 삭거(索居)는 '~을 떠나 홀로 외롭게 사는 것,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索'은 '동아줄 삭, 새끼 꼴 삭, 떨어질 삭, 홀로 삭'이라 하는가 하면, '찾을 색, 바랄 색'이라 합니다. 그래서 삭거(索居)를 색거(索居)라 하여 '찾아 산다'는 의미로 새겨, 색거한처(索居閑處)라 하여 '번거로움을 피하여 한적한 곳을 찾아 지낸다'는 의미로 새기는 이도 있습니다.
침묵적요(沈默寂寥)는 말없이 잠잠하여 편안하고 고요하다는 말입니다.
침(沈)은 침심야(沈深也)라 했으니 침(沈)은 '깊이 잠기는 것'을 것을 말합니다. 묵(默)은 묵무언(默無言)이라 했으니 묵(默)은 '말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침묵(沈默)은 '말없이 잠잠한 것'을 말합니다.
적(寂)은 적무인성(寂無人聲)이라 했으니, 적(寂)은 '사람소리가 없다'는 뜻이고, 요(寥)는 요공허야(寥空虛也)라 했으니, 요(寥)는 '쓸쓸함'을 말합니다. 따라서 적요(寂寥)는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적요안정야(寂寥安靜야)라 했으니 적요(寂寥)는 '편안하고 고요한 것'을 말합니다.
침묵적요(沈默寂寥)는 외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 사니 말없이 잠잠하여 편안하고 고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시끄럽습니다. 왜 시끄러울까요? 그것은 나와 너라는 생각에서 항상 분별하고 이익을 따라 흐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음 마음이 치성하여 늘 오욕락(五欲樂)을 추구하게 됩니다. 성실히 노력하여 순리적으로 성취하면 좋은 일이지만 능력이 안 되면서도 억지로 취하고자 하면 도처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게 됩니다. 도처에 시비가 일어나고, 거짓과 속임수로 남의 재물을 넘보고, 중상과 모략으로 사람을 이간하고, 억지로 겁탈하는가 하면 혈연(血緣)과 지연(地緣), 학연(學緣) 등의 온갖 연줄로 부정이 자행 되는 등 부조리가 많아 시끄러움이 많습니다.
위정자(爲政者)가 현명(賢明)하면 간언자(諫言者)를 중용(重用)하는데 용렬(庸劣)한 자는 간언자를 내치고 충성자(忠誠者)만 가까이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언이설(甘言利說)에는 솔깃하고 바른 말 쓴 소리는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언역이이어행(忠言逆耳利於行)라는 말이 있듯이 충언(忠言)은 귀를 거슬리지만 행동에는 이로운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렬한 자는 귀에 거슬리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운(野雲) 비구는 『자경문(自警文)』에서 말씀시기를,
"삿된 말과 마구니 말 그렇다고 잘 듣지만 성현의 가르침은 짐짓 듣지 않는도다." (邪言魔語肯受聽 聖敎賢章故不聞)
하였습니다. 세상에 간언자(諫言者)를 멀리하고 충성자(忠誠者)만 가까이하면 그들은 위세를 믿고 온갖 부정을 일삼게 되어 세상은 혼탁하게 됩니다. 뜻 있는 지사는 맞서다 당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뜻을 접고 낙향하기도 하여 산수를 벗삼고 유유자적하기도 합니다.
삭거(索居)란 마음 한가롭게 사는 것을 말함이니 앞서 소개한 양소(兩疏)와 같은 삶을 말합니다. 낙향(落鄕)하여 산수와 더불어 산다면 무슨 시비 다툼이 있을까 싶습니다.
중국 삼국시대 끝자락인 위(魏)나라 말기에 사마(司馬)씨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專橫)을 일삼게 되자 국정이 불안하였는데, 이 당시는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크게 곤욕을 치르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인 이 때 노장사상(老莊思想)이 크게 유행하여 세상의 명리(名利)에 염증을 느낀 선비들은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에 심취하여 죽림(竹林)으로 들어가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곧 완적(阮籍) · 혜강(嵆康) · 산도(山濤) · 상수(向秀) · 유령(劉伶) · 완함(阮咸) · 왕융(王戎) 등 일곱 명이었는데 이들을 일러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합니다. 이들은 부패하고 불의(不義)한 세상의 명리(名利)를 버리고 죽림(竹林)에 살면서 술을 마시며 당시 유교의 형식주의를 조소하는가 하면
사회를 풍자하고 청담(淸談)을 나누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세상은 얼마 가지 않아 위(魏)나라 황위(皇位)를 찬탈(簒奪)하고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 등 사마씨 일족에게 회유당해 해산되었습니다. 다만 혜강(嵆康)만이 끝까지 저항하다가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유신 임선미(林先味)ㆍ조의생(曺義生) 등 72명이 출사하지 않겠다고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光德山) 서쪽 기슭과 만수산(萬壽山) 남쪽에 위치한 마을에 들어가 문을 세우고 빗장을 걸고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를 두문동(杜門洞) 72현(賢)이라 합니다. 이들은 조정의 회유와 억압에도 굽히지 않았는데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젊은 황희(黃喜)만을 보내고는 비극적인 종말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두 사례를 보면 죽림에 살고 두문동에 살더라도 조정의 주목을 받으면 결코 삭거한처(索居閑處)가 될 수 없고 침묵적요(沈默寂寥)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몸은 죽림(竹林)이나 두문동(杜門洞)에 있으면서 소요(逍遙)하고 두문불출(杜門不出)했지만 마음은 결코 적요(寂寥)를 즐기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전각에 걸린 주련을 보게 되는데 그 중에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山堂靜夜坐無言 산당정야좌무언 산당의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 적적요요본자연 고요하고 고요하여 본래의 자연일세.
이 글은 중국 송(宋)나라 야보(冶父) 스님의 글입니다. 산당의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깊은 산 속의 산사, 그것도 사위가 조용한 밤, 말없이 앉아 있으면 얼마나 고요할까요? 적적요요(寂寂寥寥)하여 그대로 자연입니다. 이 세계는 그야말로 적멸(寂滅)의 세계입니다. 여기에 어떤 시비가가 붙을 것이며, 어떤 미련이 남아 있고, 그 어떤 알음알이가 끼어들 여지가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머무는 바 없는 고요한 마음의 세계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침묵적요(沈默寂寥)의 세계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쉬어야만 적요(寂寥)를 느낀다 할 것입니다.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한적한 곳에 사니 말없이 잠잠하여 고요하고 편안하다 하였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침묵을 지키며 수행하는 이를 적묵(寂默)이라 합니다. 적묵(寂默)이란 '고요히 깊이 생각에 잠기어 말이 없음'을 뜻합니다. 이런 수행을 하는 이를 '적묵'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귀명(歸命)하는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이자 시아본사(是我本師)이신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의 명호(名號)에 적묵(寂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에서 '석가(釋迦. Śākya)'는 '능인(能人. 能仁)'이라 하고, 모니(牟尼. muni)를 '적묵(寂默)'이라 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능인적묵(能仁寂默)이라고도 합니다.
다음은 《법구경(法句經)》『주법품(住法品)』의 부처님 게송입니다.
所謂仁明 소위인명 이른바 적묵(寂默)이라 부르는 것은
非口不言 비구불언 입 다물어 침묵한다 해서 아니다.
用心不淨 용심부정 마음씀이 청정하지 못한 사람은
外順而已 외순이이 겉모양만 성인처럼 냈을 뿐이다.
謂心無爲 위심무위 마음에 어떠한 집착도 없이
內行淸虛 내행청허 마음속을 깨끗이 비우고 살아
此彼寂滅 차피적멸 몸과 마음 고요히 평화로운 자
是爲仁明 시위인명 이 사람이 참다운 적묵(寂默)이니라.
여기서 인명(仁明)이란 범어 muni(牟尼)의 역어로 현자(賢者)ㆍ성자(聖者)를 말합니다. '침묵의 행을 닦는 자'라 하여 '적묵(寂默)'이라고도 합니다.
마음에 어떠한 집착도 하지 않고 마음속을 깨끗이 비우고 살아 이것과 저것 의 대립이 없고, 마음으로 생각함과 몸으로 행하는 것이 둘이 아니어서 정도 (正道)에 맞아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람, 이 사람이 참다운 적묵(寂默)입니다.
아무런 뜻도 없이 무조건 침묵(沈默)을 지켜 수행한다고 하여 다 적묵(寂默) 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현(聖賢)의 침묵은 마음을 청정히 가져서 오는 고요 속에서 깊은 지혜를 발현합니다. 침묵을 하면서도 번뇌 망상이 일어나 마음이 시끄러우며 청정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겉모양만 흉내내고 있을 뿐입니다.
누구나 시끌시끌하고 번거로운 도심을 떠나 조용한 전원생활를 즐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선뜻 나아가지 못함은 여러 인연이 얽히고 설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반연(絆緣)을 내려놓고 공기 좋고 조용한 사찰을 찾아 머물다 오거나, 풍광 좋은 산과 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 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번처(煩處)에 살더라도 시비지심(是非之心)과 분별지심(分別之心)을 내려놓고 청허(淸虛)한 마음으로 산다면 적요(寂寥)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92. 索居閑處 沈默寂寥
索 떨어질 삭/ 居 살 거 /閑 한가할 한 / 處 곳 처
■ 索居閑處(삭거한처) : 외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 사니,
沈 잠길 침/ 默 잠잠할 묵/ 寂 고요할 적/ 寥 고요할 료
■ 沈默寂寥(침묵적료) : 말없이 잠잠하여 편안하고 고요하다.
92. 索居閑處 沈默寂寥(삭거한처 침묵적요)
: 홀로 떨어져 살고 한갓지게 머무니, 잠긴 듯 잠잠하고 고요하구나.
삭거(索居)는 '쓸쓸하게 홀로 있음'을 뜻하며, 한처(閑處)는 '한적한 곳'을 말합니다.
삭거(索居)라는 말은 예기(禮記)에 나옵니다.
● 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오리군이삭거 역이구의) - "내가 벗들과 떠나 흩어져서 외로이 산 것이 이미 오래 되었다."
이와 같이 삭거(索居)는 '홀로 외롭게 사는 것, 혹은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을 말합니다.
침(沈)은 '깊이 잠기는 것'을 것을 뜻하고, 묵(默)은 '말이 없다'는 뜻이니, 침묵(沈默)은 '말없이 잠잠한 것'을 말합니다.
적(寂)은 '사람 소리가 없다'는 뜻이고, 요(寥)는 '고요함'을 뜻하니, 적요(寂寥)는 '적막하고 고요하다'는 말입니다.
침묵적요(沈默寂寥)는 "말없이 잠잠하여 편안하고 고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삭거(索居)란 마음 한가롭게 사는 것을 말함이니, 전편에서 소개한 양소(兩疏)와 같이 관직에서 물러난 향리의 삶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낙향(落鄕)하여 고향 친구나 산수와 더불어 산다면 무슨 시비 다툼이 있겠습니까?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말기에 국내외 사정이 불안정하였던바,
당시에 노장사상(老莊思想)이 크게 유행하였고, 거기에 심취한 선비들이 죽림(竹林)으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중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유명했으며, 그들은 죽림(竹林)에 살면서 사회를 풍자하고 청담(淸談)을 나누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千字文 工夫' 카테고리의 다른 글
欣奏累遣 慼謝歡招 (0) | 2020.11.14 |
---|---|
93. 求古尋論 散慮逍遙 (0) | 2020.11.14 |
91. 兩疏見機 解組誰逼 (0) | 2020.11.14 |
90. 殆辱近恥 林皐行卽 (0) | 2020.11.14 |
89. 省躬譏誡 寵增抗極 (0) | 2020.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