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매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매화
창문 가득 스며드는
대나무 긴 그림자
밤 깊어 남쪽 사랑에
달이 떠올랐다.
이 몸 정녕 그 향기에
흠뻑 젖었는가?
바짝 다가서 코를 대도
조금도 모르겠구나.
梅
滿戶影交脩竹枝(만호영교수죽지)
夜分南閣月生時(야분남각월생시)
此身定與香全化(차신정여향전화)
嗅逼梅花寂不知(후핍매화적부지)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1720~1783)가 매화를 읊었다. 밤 깊어 달이 둥그렇게 떠올랐다. 창문에 대나무 가지 그림자가 뒤섞여 어른거리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사위(四圍)가 고요하여 낮 동안의 분잡함에서 벗어났다. 이제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한쪽 곁에 놓인 매화에 바짝 다가서 향기를 맡아본다.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 몸 전체가 매화 향기에 푹 젖었으니 무슨 향기를 맡으랴? 매화 향기에 사로잡혀 매화가 나고 내가 매화인 듯 분리되지 않는 밤이다. 곳곳에 매화가 피는 시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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