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사랑하는 필로소피(philosophy)와 밝아지는 배움인 철학(哲學), 무엇을 아는 사이언스(science)와 나누어서 배우는 과학(科學) 등.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서양문물을 수입하면서 본래의 뜻과 다른 일본식 한자 낱말들을 만들었다.
지오메트리(geometry)도 영어 뜻과 다르게 기하(幾何)라 했다. 땅(geo, 畿) 넓이가 얼마인지(何) 재는(metry) 지오메트리. 기하(畿何)라고 하면 될 텐데 기(幾)로 바꾸어 번역했다. 몇 幾와 얼마 何인 기하(幾何)는 길이나 넓이, 부피 등이 몇이 되고 얼마인지 수치로 재는 것이다. 하지만 기하의 원래 뜻은 땅을 재는 지오메트리(畿何)에서 왔다. 농업을 하며 왕권국가가 탄생하면서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매기기 위해 경작지 면적을 측량하는 기하(geometry)가 생겼다. 기하학적(geometric) 무늬란 현란하고 화려한 무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측량되어 구분된 땅의 무늬다. 몬드리안이 여러 사각형을 단순히 배열한 무늬가 기하학적 무늬에 가깝다. 무슬림이 그린 멋지고 아름다운 추상적 형상과 거리가 멀다. 이렇듯 형이하학적 토지로부터 출발한 기하는 파피루스나 양가죽 등의 평면 위에 그려지면서 형이상학적 도형이 되었다. 삼각형이나 원 등 그림(圖) 꼴(形)인 도형을 이리저리 심도있게 파헤치면서 수학은 시작되었다.
기하가 땅 넓이를 구하는 일에서 시작된 산수적 셈법 지식이었다면, 도형은 인간이 고도의 추상적 사고력을 발휘하는 수학적 탐구 영역이 되었다. 호모매스매틱스인 인간의 능력이 경이롭다. 수학은 어려워도 그 역사는 재미있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81> 변조와 무조; 음악을 파괴했다지만 (0) | 2021.04.17 |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82> 산수와 수학; 왜 재미 없었을까? (0) | 2021.04.17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84> 세모꼴과 삼각형; 수학의 기원 (0) | 2021.04.17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85> 무리수와 무비수; 비정상의 수일까? (0) | 2021.04.17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86 > 공리와 정리; 수학의 체계 (0) | 2021.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