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68> 그루브와 흥겨움; 음악의 최대관건

bindol 2021. 4. 17. 04:33

듣기 좋은 음악이냐 아니냐는 결국 흥겨움, 즉 그루브가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중년 남자들이 색소폰을 배우는 이유는 ①멋지게 보여서 ②악기 하나는 다루고 싶어서 ③노래를 잘 못불러서다. 색소폰은 소리 내는 것부터 어렵다. 매일 붙잡고 해도 악기 소리를 내는 데만 며칠 걸린다. 음악 소리를 내는 일은 평생 불가능할 수 있다. ①, ②번 때문이라면 적당히 만족할 수 있지만 ③번 때문이라면 말려야 좋다.

색소폰은 성대와 비슷한 관을 통해 인간 육성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는 악기다. 성대에 문제가 없는데 노래를 잘 못부르면 색소폰을 잘 불 수 없다. 노래는 박자, 음정이 기본이지만 필링이 살아야 한다. 재즈에서 이를 그루브(groove)라 한다. 원래 파인 홈이다. 이 홈에 딱 맞는 돌출물이 박혀야 궁합이 맞아 잘 돌아간다.

은근히 에로틱한 단어다. 음악을 연주하는 내 몸 안이 홈이면 여기에 딱 맞는 기운이 들어와야, 즉 그 분께서 납셔야 그루브가 산다. 그루브에 가까운 우리말은 흥겨움이다. 흥(興)은 동시에(同) 마주 든다(?)는 뜻이 합쳐친 한자다. 같이 마주 드니 기쁘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홈과 돌출물이 맞아야 그루브가 살듯이 흥도 서로 맞아야 돋는다. 흥은 몸속에서 울렁이며 이는 느낌이다. 그루브가 몸 안에 일면 박자를 맞추기보다 리듬을 타며 음정을 맞추기보다 음감이 산다.

그루브가 사는 음악은 몸 밖으로 흘러 넘쳐 듣는 사람에게 그 흥겨움이 옮겨진다. 그루브는 음악의 그저 한 요소로만 치부하기엔 최고로 중요한 관건이다. 노래든 악기든 음악 맛을 제대로 내려면 맨 처음 내 안의 그루브부터 살펴야 옳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