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낱말 모두 무언가가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경우에 쓴다.
황산벌이란 영화에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충분히 그랬을 법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의 김유신은 백제의 계백 장군 진영에 염탐꾼을 보낸다. 시도 때도 없이 거시기를 연발하는 백제군의 전략은 "거시기할 때까지 거시기해 불자"다. 염탐꾼은 신라에 돌아와 이를 보고한다. 하지만 김유신 휘하의 장수들 누구도 거시기가 무언지 도무지 도통 해석불가다. 암호해독 전문가까지 동원해 심층분석을 하지만 거시기가 무슨 뜻인지 결국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이다. 백제 땅이었던 전라도에서 유래한 거시기는 국어사전에 어엿하게 등장하는 표준어다. 거시기는 말하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뜻이 바뀌는 도깨비 요술방망이와 같은 낱말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거시기한 마음을 받아달라고 구애할 때 여자가 아직 거시기하다고 하면 거시기의 뜻이 정반대다. 남자의 거시기는 이미 사랑하는 마음이고 여자의 거시기는 아직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이다. 가장 편리하고 쓸모있는 낱말이다.
거시기가 지칭 대명사라면 에저또는 각각 독립된 접속사다. 뭔가 말이 안나올 때 에~ 저~ 또~로 말을 얼버무리며 시간을 벌려고 쓰는 말이다. 너무 남발하면 곤란하지만 살짝 쓰면 여유롭게 봐줄 수 있다.
우리 한국인은 고맥락사회에 살기에 분명확실보다 애매모호한 말이 많다. 거시기와 에저또가 그렇다. 우리끼리 서로 간에 유대감과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살면 좋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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