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백승과 백전불태!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다. 생각에도 저급과 고급이 있다.
신문방송이나 인터넷에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손자병법에 36계가 있다고 들먹인다. 하지만 6000여 한자로 이루어진 손자병법 13편 원문 어디에도 그런 구절은 없다. 미녀가 적의 장군을 현혹하는 제31계 미인계나 아주 불리하면 도망가는 게 최상책이라는 마지막 제36계 주위상(走爲上→줄행랑)은 익명으로 전해져 온 군사잡술에 불과하다. 손자병법이 들려주는 핵심 메시지는 싸우지 않고 적이 굴복하여 이기는 것이니 비호전적이다. 요즘 마케팅에서 말하는 블루오션과 같은 맥락이다. 시뻘건 바다에서 피 튀기게 경쟁하지 않고 푸른 바다에서 여유롭게 이기는 비결은 고객의 필요와 욕구에 애써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혁신적 가치를 주는 것이다. 오로지 이기기 위한 천박한 전쟁 병법서가 아니라 격조 높은 전략 철학서로 인정받는 손자병법에 백전백승과 같은 저급한 글귀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백전백승이 최선이 아니라며 경계했다. 다만 백번(百) 싸워도(戰) 위태롭지(殆) 않다(不)는 백전불태가 있다.
이기게 되는 경쟁철학을 내포하는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어찌하여 이기기 위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되었을까? 아무래도 승리욕에 불타는 현대인들이 바꾸었을 터.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미국인도 못 알아듣는 파이팅을 외치며, 사진 찍힐 때 늘 승리의 V를 펴는 물증을 보면 코리안이 능히 그랬을 심증이 간다. 이제라도 그러지 말자.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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