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44> 난장토론과 난상토론: 해야 할 것은?

bindol 2021. 4. 18. 04:27

발음이 비슷하지만 두 낱말은 완전히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

뒤죽박죽이 된 난장판이 심하면 '아사리판'이나 아수라장이 된다. 아수라장(阿修羅場)은 닦여진(修) 비단(羅) 언덕(阿)의 땅(場)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인 아수르(Asur)의 한자 음역이 아수라(阿修羅)다. 아수라는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악신이다. 아수라가 하늘과 싸워 이기면 빈곤과 재앙이 와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인간이 분노와 증오로 서로 헐뜯고 비방하면 아수라장의 난장판이 된다. 그렇게 서로를 격하게 치는(討) 말(論) 싸움이 난장토론(亂場討論)이다. 난장토론은 어지러운 난(亂)을 만드는(作) 작난질, 즉 장난질이다. 애들의 가벼운 장난은 귀엽게 봐주지만 어른들의 장난은 세상을 어렵게(難) 만든다(作).

작난(作亂)하며 작난(作難)하는 난장토론이 멈추려면 난상토론(爛商討論)이어야 한다. 난상(爛商)이란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하는 일이다. 난(爛)은 꽃이 흐드러지며 빛나게 피듯이 푹 무르익는 상태다. 상(商)이란 상인이 손님을 헤아리듯이 상대방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다. 난상토론이란 파편적, 피상적이 아니라 무르익은 생각을 서로 헤아리는 숙의(熟議) 토론이다. 숙의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난장토론을 하면 서로 목소리 높여 핏대를 높이지만 결론도 없이 상처만 남는다. 난상토론을 하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므로 조용히 말해도 생기와 활력이 넘치며 합의와 타협에 이른다.

과연 난상토론이 가능할까?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인간의 복잡단순한 본성은 난장토론 쪽으로 이끈다. 그러니 합리적 이성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서로의 본성이 허심탄회하게 만나 모여 살풀이하듯 풀어야 풀린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