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9> 식물인간과 인면수심 : 인간주의 용어

bindol 2021. 4. 18. 04:31

식물과 동물이 이 말을 알아 듣는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명예훼손이라고 할까?

식물이 한자리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움직일 필요가 없어서다. 땅에 심어진(植) 식물은 동물처럼 이리저리 여기저기 움직이지 않아도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 빛을 받아들인 잎에서 이뤄지는 광합성 화학식(6CO₂+6H₂O→C6H₁₂O6+6O₂)은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오묘한 섭리다. 식물이 이산화탄소와 물을 빨아들여 내놓은 포도당과 산소 덕분에 동물은 숨 쉬며 먹고 살 수 있다.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없다면 거대한 생태계 순환은 멈추며 생명은 사라진다. 광합성이 없다면 곡물은 물론 고기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식물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식물인간이라는 불경스러운 단어를 쓰다니 식물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니다. 의식실종인간이 옳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도 인면수심이라는 말에 대해 대단히 불쾌히 여길 것이다. 사람(人)의 얼굴(面)로 짐승(獸)의 마음(心)을 가졌다는 것은 인간답지 못한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짐승의 마음이 뭐 어떻다고 짐승같은 인간이라니? 불손하다. 사나운 맹수도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다른 먹잇감을 죽이지는 않는다. 다만 생존을 위해 적당히 죽여 먹을 뿐이다. 인간은 돈을 위해서라면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전쟁도 불사한다. 인면수심은 수면인심으로 바꿔야 맞다. 만일 동물들이 사람을 닮아가서 짐승(獸)의 얼굴(面)이지만 사람(人) 마음(心)처럼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동물이 나온다면 말이다.

식물, 동물에 빗대는 말은 식물이나 동물이 볼 때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사람 먼저, 인간 중심, 인간 우선, 인간 위주인 인문학이나 인본주의 등의 인간주의에서 벗어나야 말이 제대로 온전해진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