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많이 마시는 소주는 대한민국 대표 술이다. 그런데 원래 소주는 아니다.
증류(蒸溜)란 발효주를 불로 끓여 물에서 알코올을 분리하는 과정이다. 포도를 발효시킨 와인을 증류하면 코냑 등의 브랜디가 된다. 보리(麥) 술(酒) 맥주를 증류하여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위스키가 된다. 사탕수수, 선인장, 수수(高梁)를 발효-증류하면 럼, 테킬라, 고량주가 된다. 호밀 등을 발효시켜 자작나무숯이 있는 증류기를 거치면 보드카다. 몰트 등을 발효시킨 증류주에 쥬니퍼베리로 향을 내면 진이다. 유목인들은 동물 젖을 발효-증류시킨 술을 마셨다. 나라마다 전통 증류주가 있다. 세상 증류주들은 모두 불로 데워 증류시킨 소주다. 우리는 고려 때부터 몽고군들이 중동의 아랍인한테 배운 증류기술을 받아들여 소주를 만들었다. 찐 쌀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막걸리나 동동주를 여과시키면 맑은 술인 청주(淸酒, sake)가 되지만 불로(燒) 증류시키면 소주(燒酎)가 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영국 위스키업자한테 배운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하여 도수가 높은 술을 만들었다. 세 번이나 증류하므로 소주(燒酒)가 아니라 소주(燒酎)라 했다. 곡물, 고구마 등으로 만든 소주 주정에 물을 타서 농도를 낮추고 맛을 낸 것이 희석식 소주다.
1965년도에 식량절약을 위해 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를 일절 금지했다. 이후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생산하는 주정(酒精)에 물을 탄 소주가 나왔다. 30도부터 시작된 이 희석식 소주는 오십년 가까이 지나 16도 가까이 점차 내려갔다. 그만큼 물을 많이 탔으니 순하면서 맹하다. 10개 지역을 대표하는 희석식 소주 만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증류식 소주들도 다양해져 보다 진한 풍류를 나름대로 즐기면 좋겠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27> 빨치산과 빨갱이: 무엇이 레드인가? (0) | 2021.04.18 |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28> 법과 법: 무슨 법을 따를까? (0) | 2021.04.18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0> 술고래와 '초빼이'; 어디까지 마실까? (0) | 2021.04.18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1> 취중진담과 취중망언 : 술 취하면? (0) | 2021.04.18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2> 알코올과 리쿼어: 억지로 뭘 할까? (0) | 2021.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