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6> 한참과 오래 ; 여유를 위한

bindol 2021. 4. 18. 04:52

두 낱말 모두 비슷한 말이면서 우리에게 여유있도록 생각할 거리를 준다.

한참 걸린다는 말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 걸린다는 뜻일까? 말 그대로 한 참(站)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참은 역참(驛站)에서 온 말이다. 몽골군은 수도 중심의 선이 아니라 바둑판과 같은 점 조직의 역참을 운영하여 거대한 몽골제국을 기민하게 움직였다. 자동차와 기차가 없을 때 부산에서 서울까지 간단하면서 화급한 연락을 하려면 봉수대에서 봉화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복잡하면서 시급한 메시지를 주려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말(馬)을 타고 사람이 서찰을 전달했다. 아무리 말이라고 해도 한 마리 말이 약 450km 정도 되는 천 리길을 단번에 달릴 수는 없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힘좋은 새 말을 갈아탈 수 있도록 역참을 두었다. 대개 30~40리 간격으로 두었다고 한다. 4km가 십리니까 12~16km마다 둔 것이다. 경주마의 최대시속은 60km라지만 이동마의 시속은 그 절반 정도다. 시속 30km 정도다.

그렇게 따지면 하나의 참 간격인 15㎞ 정도를 가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그렇게 하나의 참을 30분 달려 36개의 역참을 차례대로 거치면 18시간에, 얼추 하루 만에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걸어서 가는 것보다 15배 이상 빨랐다. 앞으로 비행기 속도를 내는 열차 기술이 현실화되면 1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과연 빠르게 가면 우리는 잘살게 될까? 빨라서 얻는 편리함 대신에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오래는 세종 때 만든 석보상절에 나오는 순 우리말이다. 오래오래 잘 살려면 한참한참을 기다리는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