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89> 경험과 체험; 내 몸이 하는 것은?

bindol 2021. 4. 19. 05:14

내가 난생 처음 말을 타게 된다면 이는 경험일까? 체험일까?

경(經)이라는 한자는 부수인 실()의 뜻을 살피면 여러 뜻을 이해하기 쉽다. 가로의 씨실에 대해 세로의 날실 옷감을 짜니 다스리는 경영(經營)이며, 실을 짜려면 어느 단계를 지나는 경과(經過)가 있고, 실로 꿰매어 말씀이 담긴 책을 만드니 경전(經典)이다. 이렇듯 경이란 머리를 써서 하는 것들이다. 경험(經驗)도 마찬가지. 말타는(驗) 것을 잘할 수 있도록 이성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경험이다. 경험한 것들은 모아져서 귀납이라는 과학적 방법의 근거가 된다. 경험과 비슷한 체험(體驗)에는 경험처럼 이성적으로 머리를 쓰며 뭔가를 다스린다는 뜻이 없다. 단지 내 몸(體)이 말타는(驗) 것이다. 말을 탈 때는 잘 탈 수 있도록 내 이성적 의지로 다스릴 수 없다. 그냥 내 뼈(骨)를 골격으로 오감을 인식하는 감각기관과 오장육부가 들어있는(豊) 나의 몸(體)이 말을 타는 것이다. 타면서 말의 소리, 냄새, 모습, 감촉 등 무섭고 설레고 좋고 나쁘고 짜릿하고 어지러운 여러 오감의 기분을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며 느끼는 것이다.

경험이 이성적, 과학적으로 따지는 대상이라면 체험은 본성적이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행위 자체다. 사람은 어떤 자극에 대하여 경험하기보다 먼저 체험한다. 내가 그에게 남다른 가치를 주면 그가 색다른 체험을 하며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마케팅의 전환적 관점인 브랜딩, 즉 브랜드 경영도 마찬가지. 우리 브랜드가 고객에게 남다른 가치를 주면 고객이 색다른 체험을 하며 결국 고객과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 물 흐르듯 순리적인 체험 마케팅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패키징과 같은 천박한 마케팅이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