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8> 감정과 감성 ; 전혀 다른 느낌

bindol 2021. 4. 19. 05:23

 

두 낱말은 뜻이 다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 다르다. 아니 달라졌다.

 

저 사람은 말을 참 감정적으로 하네! 저 사람은 말을 참 감성적으로 하네? 두 문장은 뜻이 전혀 다르다. 전자는 싫은 내색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며 말한다는 뜻이다. 후자는 상대방이 공감 가도록 부드럽게 말을 잘한다는 뜻이다. 전자가 부정적이라면, 후자는 긍정적이다. 감정과 감성은 반대말이 된다. 어째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 한자인 감정의 정(情)과 감성의 성(性)에 관해 제 아무리 열심히 연구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정은 인정, 정성, 정취 등의 낱말에 쓰이며 좋은 뜻에 주로 쓰인다. 정이라는 글자를 하나만 떼어놓고 보아도 느낌이 좋다. 오죽하면 초코파이 이름이 정일까? 성은 천성, 성질, 성별 등의 낱말에 쓰이며 가치중립적이다. 성이라는 글자를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섹스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니 오히려 감성적보다 감정적이 더 좋은 뜻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어는 습관의 산물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써왔으니 그렇게 되는 것을 어쩌겠는가? 아무리 감정과 감성은 본래 뜻이 이렇고 저러하니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해 보았자 헛일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길들여진 감정과 감성의 뜻에 충실히 따르면 감정은 센티멘털한 자기 중심의 감상에 가깝고, 감성은 예민한 상대 중심의 공감에 가깝다.

 

전자에 빠지면 오로지 눈앞에 나의 좁은 세계만 넓게 펼쳐진다. 적당하면 삶에 도움이 되지만 증세가 아주 심해지면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 즉 ADHD다. 후자에 치중하면 순간적인 나의 감정을 적절히 자제하며 상대방과 좋은 교감을 나누게 된다. 즉 감성지수 EQ가 높아진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