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과 초월은 원래 있는 말이고, 포론과 포월은 새로 만든 말이다. 무슨 차이일까?
학생들의 토론대회에 간 적이 있다. 정말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말(言)의 마디(寸)마다 상대방을 치고, 때리고, 공격하며, 비난하는 토(討)의 격한 대결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 딴죽을 걸기 위해 듣는 것이라면 모를까? 무르익은(爛) 자신의 생각과 상대방을 헤아리는(商) 난상토론(爛商討論)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잘 알지도 못하는 어지러운(亂) 마당(場)에서 난장토론(亂場討論)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포론이다. 포론에서 포(包)란 엄마가 뱃속의 아이(巳)를 감싸안듯이(?) 상대방의 생각을 감싸안는 것이다. 제대로 헤아릴 수 있도록 귀기울여 경청하며 나의 무르익은 생각을 말해서 서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적의 합의점에 이르거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포론이다. 초월(超越)은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이 땅을 뛰어올라(超) 넘어서(越) 벗어나는 것이다. 말은 멋지게 들리지만 지금의 괴롭고 어렵고 힘든 고단한 우리의 현실을 뒤로한 채 자기만 빠지는 짓일 수 있다. 초월해서 사는 사람은 도사가 아니라 염세적 회의주의에 물든 도망자이기 쉽다. 초월과 다른 포월은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벗어나 외면하지 않는다. 나무덩굴은 땅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기어가며(匍) 넘는다. 포월해서 사는 사람은 대개 남루하고 허름해 보이지만 현실에 충실한 생활인이다.
토론의 討를 包로, 초월의 超를 匍로 바꾸면 의미의 변화와 함께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토론은 세상을 거칠게 만들고 초월은 세상을 벗어나게 하지만, 포론은 세상을 부드럽게 만들고 포월은 세상을 감싸도록 이루어 간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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