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된 낱말 중에 발음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명확한 단어가 많다. 권위와 권한, 실수와 실패, 전투와 전쟁, 투기와 투자 등이 그렇다. 이 칼럼에서 그런 것들을 다루어도 되지만 될수록 피하려고 한다. 차이가 명확해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곤욕과 곤혹은 많이 잘못 쓰인다. 한자로 따지면 너무 다른 뜻이다.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곤(困)은 나무(木)가 우리(口)에 갇혀 있는 모양이다. 죄지을 일 없는 나무도 생명이니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겠는가? 사람이 갇혀 있는 죄수(囚)도 괴롭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욕이 곤욕이다. 욕(辱)은 하늘을 뜻하는 별 辰과 법칙을 뜻하는 마디 寸을 합친 글자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욕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농사는 하늘(辰)의 법칙(寸)에 어긋나면 안 좋은 일을 당해 욕을 본다는 뜻에서 지금의 욕이 되었다.
한국인의 욕은 아마도 세계최고 수준이다. 욕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감이다. 그렇게 심하게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면 당사자는 얼마나 곤욕을 치르며 당하겠는가? 곤혹은 나 스스로 어찌 할 바를 몰라 힘든 내 안의 감정이다. 혹(惑)은 혹시나(或) 하는 마음(心)으로 나를 유혹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하려면 저게 날 유혹하고, 저렇게 하려면 이게 날 유혹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심정이 곤혹이다. 곤혹스러운 심정인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즐거운 일보다 괴로운 일이 더 많다. 곤욕을 당하며 곤혹스러운 경우가 차 마시고(茶) 밥 먹는(飯) 일(事)처럼 다반사인 것이 인생이다.
그런 다반사의 괴로움을 항상심의 즐거움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그나마 잘 먹고 잘살게 되지 않을까?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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