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6> 안면과 얼굴; 무엇을 가꿀까?

bindol 2021. 4. 20. 05:02

두 낱말 모두 비슷한 뜻이긴 한데 차원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르다.

 

얼굴을 뜻하는 우리말로 낯, 쪽이 있다. 낯 두껍다는 얼굴이 두꺼워 뻔뻔하다는 뜻이다. 맨 얼굴은 민낯, 얼굴빛인 낯빛은 안색(顔色)이다. 쪽팔린다는 말은 얼굴이 팔린다는 뜻이다. 얼굴을 뜻하는 한자로는 안, 면, 용이 있다. 안(顔)은 머리(頁)를 중심으로 하는 얼굴이다. 면(面)은 얼굴 윤곽이 어느 쪽 방향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면상(面相)은 영어 face에 가장 가깝다. face의 어원은 라틴어 facies인데 납작한 모양의 판자다. 인간의 얼굴은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납작한 편이다. 그런 납작한 얼굴 모양이 면상이다. 용(容)은 머리만이 아니라 머리() 아래 골짜기(谷)처럼 많은 부위를 담고 있는 몸 전체의 얼굴이니 몸얼굴인 신(身)에 가깝다. 용모단정은 얼굴만이 아닌 몸 전체가 단정한 것이다.

 

얼굴을 뜻하는 낱말들이 이렇게나 많지만 얼굴처럼 뜻깊은 말은 없다. 얼굴이란 얼의 꼴이다. 얼꼴이 변해서 얼굴이 되었다. 얼이란 우리 마음 속에 담긴 정신이다. 정신은 온갖 잡생각들을 걸러내고 남은 생각의 엑기스다. 농도가 옅은 와인을 증류하여 알코올 도수가 높은 브랜디, 맥주를 증류하여 위스키, 막걸리를 증류하여 소주(燒酒)가 된다. 이 소주에 물을 타면 희석식 소주(燒酎)가 되지만. 우리 마음속 생각을 증류한 엑기스(津液)가 바로 얼이다. 그 얼의 모양이 겉으로 나타난 꼴이 바로 얼굴(shape of spirit)이다.

 

40세 이후 얼굴은 자기 몫이다. 얼굴이 단지 낯, 쪽, 안면, 면상, 용모라면 이해가 안되지만 얼의 꼴이라면 이해가 된다. 사람 얼굴이 좋아 보이려면 찍어 바르거나 뜯어 고칠 게 아니라 생각들의 진액인 정신이 맑고 밝아야 한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