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낱말은 모두 용기(容器)들이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면 재미있고 의미있다.
약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인류는 흙으로 빚어 불에 구운 토기(土器)를 썼다. 질은 밥처럼 질척질척한 질은 흙인 진흙으로 만든 질그릇 토기다. 빗살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에 무늬없는 토기로 바뀌고 이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굽는 온도를 섭씨 1000도 이상 올리고 유약(釉藥)인 잿물을 발라 굽기 시작했다. 그냥 질그릇 토기에 오짓물인 잿물을 발랐으니 오지그릇 도자기다. 도자기(陶瓷器)는 1300도 이하에서 굽는 도기(陶器)와 1300도 이상에서 굽는 자기(瓷器)로 나뉜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자기다. 중국에서 유래한 차이나도 소뼈를 진흙에 넣어 만든 자기다. 자기 중에서 백토로 만들어 희고 매끄러운 그릇이 사기(沙器, 砂器)다. 가마 요(窯)에서 시작된 요업공학은 토기, 도기, 자기, 사기인 단순용기에서 벗어나 첨단공학인 신소재공학으로 전환되었다. 그래도 그 뿌리는 흙(土)이다. 신소재에 꼭 필요한 희토류(稀土類)도 흙이다. 흙의 특성에 가장 어울리는 용기는 옹기(甕器)다. 옹기란 가장 평범한 독이고 항아리다. 아름다운 예술품 도자기처럼 화려하거나 빛나지 않고 투박하며 질박하지만 옹기 표면에는 미세한 숨구멍(氣孔)이 있다. 이 기공 덕분에 옹기에 담긴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에서는 부패가 아닌 발효가 일어난다. 버려지면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용기와 달리 옹기는 깨지면 사금파리가 되어 흙으로 자연스레 돌아간다.
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가 사이좋게 모여있는 모양이 옹기종기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 김칫독들이 그립다. 거실에 모셔진 자기도 귀하지만 마당에 놓여진 옹기와 같이 사는 삶이 살맛나는 삶이 아닐까?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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