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낱말은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차이가 벌어진다.
순자철학의 핵심인 예(禮)와는 별도로 일상생활에서 예의(禮儀)는 맹자철학의 핵심인 의(義)가 아니라 행동 의(儀)를 쓴다. 그래서 예의란 프랑스 궁중에서의 행동예법이 적힌 꼬리표였던 에티켓(etiquette)처럼 지켜야할 예절의 뜻에 가깝다. 가령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똑바로 하라는 예절 리스트 대로 예의에 따라 행동하면 예의 바른 사람이 된다. 행동준칙이 있는 예의와 달리 경우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다. 경(境)은 어떤 장소인 곳을 뜻하며 우(遇)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니 경우란 우연히 만나게 된 곳으로 원래 의미는 형편이나 사정의 뜻이다. 이런 경우(case)와 저런 경우(case)처럼 흔히 쓰는 말이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장소인 경우처럼 우연히 만나는 사람도 있다. 그때 그 사람의 우연한 행동이 바르면 경우 있다 하고 아니면 경우 없다 한다. 우연히 만난 곳을 뜻하는 경우가 도리의 뜻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때 경우란 사람의 도리와 관계되어 우연히 보여지는 어떤 사람의 행동이다. 프랑스어에서 온 에티켓, 라틴어에서 온 매너(manner)보다 우연한 것이 경우다. 에티켓을 잘 지키면 매너도 좋고 예의도 바르겠지만 우연한 경우에 경우가 밝은 사람에 못미친다.
예의가 형식적이라면 경우는 내재적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겉으로만 예의를 잘 지키면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 때 경우에 어긋나는 경우가 크다. 반면에 경우에 밝은 사람은 우연한 돌발상황에서도 경우에 어긋나는 경우가 적다. 그 사람 속에 행동준칙보다 행동철학이 분명히 섰기 때문이다. 우리는 형식적인 예의를 잘 지키기에 앞서 내재적인 경우에 밝아야 한다. 속의 경우가 밝으면 겉의 예의는 뒤따라오게 된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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