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1> 사실, 현실, 진실 ; 알 수 없는 것은?

bindol 2021. 4. 20. 05:14

세 낱말은 비슷하게 들려도 엄연한 차이가 분명하다. 왜 그럴까?

사실에서 사(事)는 깃발 단 깃대(|)를 손(手)으로 세우고 있는 모양으로 일어난 것을 잊지 않고 적는 일이다. 그러니 사실의 사전 정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현실에서 현(現)은 구슬(玉)이 빛나도록 드러나며 나타나는(見) 것이다. 그러니 현실의 사전 정의는 현재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는 일이나 상태다. 진실에서 진(眞)은 사방팔방(八) 어디에서 보아도(目) 거짓없는 참 모습이다. 그러니 진실의 사전 정의는 거짓없이 정말로 진짜인 것이다. 이렇게 한자로 따져도 비슷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가만히 더 생각하면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 벌어진다. 사실(fact)은 분명하게 보이는 하나의 점(点)이다. 분명하기는 해도 전반적으로 보면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 현실(reality)은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물(物)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입체가 되듯이 사실의 점들이 모여 손으로 잡히는 실제의 물건이 된다. 진실(truth)은 틀림없이 거짓없이 완전히 정확한 想(idea)이다. 일체의 오류없이 그대로 참인 것이 진실이다.

과거나 지금의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단편적 사실이 전반적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가령 저 사람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한 사실이 있어도 전반적 맥락으로 따지면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닐 수 있다. 진실은 인간의 이성적 합리적 과학적 능력만으로 밝힐 수 없다. 신만의 몫인 진실은 희미하며 모호하다. 100% 정확한 객관적 진실을 명명백백 뚜렷하게 밝힌다는 일은 가장 위험한 독단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 길로 들어서면 언제나 옳은 나와 언제나 틀린 너는 서로 공격할 사실만 붙잡고 늘어지며 끝없이 싸우게 된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