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낱말들은 부정적 의미가 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긍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갈등이란 칡(葛)과 등나무(藤)라는 뜻이다. 칡넝쿨과 등나무가 얽히며 자라는 것처럼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꼬여 있는 모양이다.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한다"는 문장에서와 같이 갈등은 분열과 대립이라는 낱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낭패란 중국전설에 나오는 상상속 동물이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은 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두 녀석이 함께 걸으려고 하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쉽고 따로 떨어져도 움직이기 힘들다. "낭패를 본다"는 말은 이리과 동물인 낭과 패가 힘들게 걸으려고 하지만 넘어지는 모습이니 실패했다는 뜻이다.
모순이란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창(矛)과 방패(盾)다.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뚫지 못하는 방패는 서로 상반되니 모순이다. 식물성 갈등, 동물성 낭패, 광물성 모순의 공통점은 낱말의 뜻이 글자의 의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처해진 모양이나 상황에서 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숨겨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갈등과 낭패, 모순은 현실적으로 가장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칡과 등나무인 갈등도 얽히고 꼬이면서도 나름대로 맞추어 자연스럽게 잘도 자란다. 앞다리와 뒷다리가 각각 짧은 낭패도 힘들지만 서로 맞추면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다. 어떠한 방패도 뚫고 어떠한 창도 막을 수 있는 모순도 서로 맞추면 서로 싸울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런 갈등의 세상, 낭패의 세상, 모순의 세상에서 산다면 그 곳이 바로 이상낙원이 아닐까?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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