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9> 풍요와 행복; 살맛나는 삶은?

bindol 2021. 4. 21. 04:44

풍요와 행복은 어떤 관계일까? 당장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생활이 풍요로우면 인생이 행복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풍요(豊饒)란 두텁고 살지며 넉넉하고 가득하다는 뜻이다. 豊(풍)은 원래 이다. 제단 위에 넉넉한 음식을 가득 올려놓은 모양이다. 사람도 넉넉하게 생겼으면 풍만하다고 하고, 곡식이 많이 열리면 풍년이라고 한다. 요(饒)도 역시 넉넉하며 기름지다는 뜻이다. 풍요한 삶이란 물질적으로 부유하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아무리 가난해도 굶어 죽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질적으로 풍족해도 참 행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풍요로우면 행복하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행복이란 말에서 행에는 엄청난 뜻이 담겨 있다. 幸(행)이란 일찍 죽을 夭(요)와 거스릴 (역)이 합쳐진 글자다. 일찍 죽는 것을 거슬러 면했으니 다행이라는 뜻이 바로 幸이다. 지금 건강하게 숨 쉬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늘로부터 복 받았다는 행복이다. 돈이 많아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면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의 그 엄청난 의미는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지상주의를 아래로 깔본다. 지금 우리 시대는 너무나도 풍요로운 사회(affluent society)다. 이윽고 풍요 바이러스가 야기하는 악성 인플루엔자인 어플루엔자(affluenza)에 다들 감염되고 말았다.

인플루엔자는 예방약인 백신도 있고 치료약도 있겠지만 어플루엔자는 약이 없다. 답도 없다. 다만 우리의 물질적 탐욕을 줄이는 길 밖에는…. 풍요한 삶은 부유한 삶이 될지언정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행복이란 일찍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복이라네. 거 참 기가 막힌 엄청난 행복이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