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6> 관광과 여행 ; 무엇을 할까?

bindol 2021. 4. 21. 04:47

대학에 관광학과가 많다. 그런데 관광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여행사라 한다. 신라시대에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승려 혜초는 관광을 했을까? 여행을 했을까?

관광이란 한자 뜻 그대로 멋진 풍광(光)을 보는(觀) 것이다. 영어 'sightseeing'이 빛나는 풍광(sight)을 보는(seeing) 것이니 관광의 뜻과 딱 맞는다. 하지만 여행이란 한자 뜻 그대로 나그네(旅)가 되어 가는(行) 것이다. 영어 'travelling'이 이동하며 다닌다는 뜻이니 여행의 뜻과 잘 맞는다. 길든 짧든 정해진 코스를 따라 순회하며 다니는 튜어(tour)가 관광에 가깝다면, 정해진 곳 없이 발닿는 대로 유람하는 트립(trip)은 여행에 가깝다. 프랑스 파리를 갔을 때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뜨 언덕을 하나씩 둘러 보며 멋진 배경에 사진 박고 오는 것은 관광이다. 하지만 파리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사는 삶과 더불어 그들과 교감하며 대학가나 시장도 가서 현지인들과 함께 하고, 골목길도 걷는 것은 여행이다. 파리 사람이 부산을 왔을 때,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에 가고 근사한 한정식집에서만 먹는다면 관광이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 젖어서 그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금정산도 오르고, 영광도서에서 책도 사고, 돼지국밥, 밀면을 먹는다면 여행이다.

대학은 관광보다 여행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어야 마땅하다. 여행사도 진정한 여행사라면 멋진 관광 코스를 개발하기보다 알찬 여행 길의 안내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멀리 해외에 나가지 않고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관광의 관점으로 가느냐, 여행의 관점으로 가느냐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낳는다. 관광의 결과는 사진으로만 남지만, 여행의 결과는 머릿속 가슴속 깊이 박힌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