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족지혈(曺族之血)’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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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도 자서전을 쓴다. 감형 가능성이 없는 흉악범일수록 솔직하다고 한다. 이런 자서전은 베스트셀러도 되고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다. 연쇄살인범 에일린 워노스의 자서전 ‘몬스터’는 영화로 만들어져 주인공 여배우에게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안겼다. 반대로 무죄를 받거나 유죄를 받아도 감형 희망이 있으면 솔직하지 못하다. 거짓과 변명으로 이야기를 꾸며낸다. 오 제이 심프슨의 자서전 ‘IF I DID IT(내가 했다면)’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향은 화이트칼라일수록 심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서전 유형이다. 김경준의 ‘BBK의 배신’, 신정아의 ’4001′이 그랬다. 세상 앞에서 벌거벗는 기분으로 자신의 사기 행각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면 한국 사회와 권력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의미 있는 서사(敍事)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변명하고 미화하고 거짓까지 보태 종이만 낭비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조만간 자서전 두 권이 이 대열에 합류할 모양이다. ‘한명숙의 진실’과 ‘조국의 시간’이다. 한씨는 “10년간 슬픔과 억울함으로 꾹꾹 눌러 진실을 썼다”고 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의 억울함과 진실은 무엇일까. ‘대변에 향수 뿌리기'라는 어느 평론가의 논평이 지나친가. 조국씨는 소셜미디어에 집필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 내려가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꾹 참고 썼다.” 그러자 바로 신조어가 탄생했다. ‘조족지혈(曺族之血)’. 조국 가족의 피라는 뜻이다. 앞으로 조씨 지지자들은 이 말을 하찮다는 뜻의 원래 의미(鳥足之血·새발의 피)와 정반대로 사용해야 할 듯하다.
▶이청준은 소설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자서전을 원하는 사람에 대해 “적나라한 진실을 증언할 용기도 없고 자신의 과거와 상관없는 새로운 내력을 갖고 싶어 자신의 삶을 거짓 증언한 위인들”이라고 했다. 진실을 증언할 용기가 있었다면 조씨는 이미 법정에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때마다 침묵했다. 하루 300번 증언을 거부한 적도 있다. 이러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자서전인가. 이것은 또 어떤 위선인가.
▶자서전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매우 어려운 장르에 속한다. 참회록을 쓰듯 써야 최소한의 진실에 겨우 다가간다고 한다. 조씨가 그렇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조만대장경’으로 불리는 자신의 위선을 반성해도 책 몇 권은 나올 것이다. 윤동주의 시 ‘참회록’ 일부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이런 자세로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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