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롭게 할 신(斤-9)백성 민(氏-1)가까이할 친(見-9)
전국시대에 들어서자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였고, 끊임없이 분란과 전쟁이 거듭되었다. 사람은 본디 "이끗을 좋아하고 밝히는 본성" 즉 好利之性(호리지성)을 타고났다고 주장하는 법가의 학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한 시대였다. 그러나 거울이 때가 끼어 흐리다 해서 그 본성까지 흐린 것은 아니듯 혼탁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버둥질하면서 간사하고 포악한 짓을 일삼는다 할지라도 사람의 본성이 본래 흐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유가 사상가들의 확신이었다. 그런 확신이 '明明德(명명덕)'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니, 이 얼마나 처절한 외침인가!
명명덕을 이어 나오는 말은 '在親民(재친민)'이다. "밝은 덕을 밝히는 데서 시작한" 대학의 길이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서 끝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친민이 '大學章句(대학장구)'에서는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뜻의 '新民(신민)'으로 되어 있다. 애초에 程伊川(정이천)이 '在親民(재친민)'을 '在新民(재신민)'으로 고쳐 읽었고, 주희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新者, 革其舊之謂也. 言旣自明其明德, 又當推以及人, 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汚也."(신자, 혁기구지위야. 언기자명기명덕, 우당추이급인, 사지역유이거기구염지오야.) "신은 옛것을 바꾸는 것을 이른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을 밝힌 뒤에는 다시 그것을 미루어 남에게 미쳐서 그 사람 또한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없애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먼저 자신의 밝은 덕을 밝히는 공부를 한 군주나 지식인이 제 공부를 밑천으로 삼아 백성들을 가르쳐서 일깨워준다는 뜻이다. 이는 백성도 밝은 덕을 타고났으므로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해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대에는 백성도 밝은 덕을 타고났다고 본 통치자나 지식인이 거의 없었다. 성선(性善)을 주장한 맹자도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왜 그런가?
고대 사회에서 백성은 배울 餘裕(여유)와 餘暇(여가)가 없었다. 아니, 그럴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지도 못했다. 대부분 통치자들과 귀족은 백성을 한낱 노예처럼 여겨 시시때때로 징발해 부역에 동원하거나 갖가지 명목으로 가혹하게 수탈하였다. 이는 백성을 떳떳한 생명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뜻한다. 백성들 또한 그런 지배층의 인식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찌 스스로 밝은 덕을 지녔다고 자각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유가 정치가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어리석고 미약한 백성을 저버리지 않고 가까이하며 덕을 베푸는 일이었다. 그게 '親民(친민)'이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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