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릴 치(水-5)밝힐 변(辛-9)갈 지(丿-3) 용마루 극(木-9)
'관자'의 '칠법'에 나온다.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그 군대가 강해질 수 있었던 적은 아직 없었다.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어도 군대를 쓰는 책략에 밝지 못하면 아직 안 된다. 군대를 강하게 하지 못하면서 반드시 적국을 이길 수 있었던 적은 아직 없었다. 군대를 강하게 할 수 있어도 적국을 이기는 방책에 밝지 못하면 아직 이기지 못한다. 군대가 적국을 이기지 못하는데도 천하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적은 아직 없었다. 군대가 적국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천하를 바로잡을 명분이 분명하지 않으면 아직 안 된다."
상앙은 먼저 법령을 세웠다. 당연하다. 그는 法治(법치)를 내세운 법가사상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가에서는 무엇을 내세울까? '순자' '議兵(의병)'에서 "禮者, 治辨之極也, 强固之本也, 威行之道也, 功名之總也"(예자, 치변지극야, 강고지본야, 위행지도야, 공명지총야) 곧 "예의는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용마루고, 강하고 굳건해지게 하는 뿌리며, 위세를 펴게 하는 길이고, 공적과 명성을 올리는 요체다"라고 말했듯이 유가라면 예의를 세우는 것이 먼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법령과 예의 두 가지가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은 구실을 한다. 둘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는 형세나 시세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에서 왜 법령이나 예의가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 우선이다.
법령과 예의 모두 정치의 근간이다. 정치란 나라를 다스려 백성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백성이 잘 살 수 있도록 군주가 내린 것이 법령이고, 백성의 삶이 윤택해지도록 마련한 것이 예의다. 백성의 삶을 도외시한 채 논하는 법령이나 예의는 헛소리고 선소리일 뿐이다. '맹자' '梁惠王 上(양혜왕 상)'에서 "養生喪死無憾, 王道之始也"(양생상사무감, 왕도지시야) 곧 "산 사람을 먹여 살리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섭섭함이 없는 것, 이것이 왕도의 시작이다"라고 말한 것도, '관자' '正世(정세)'에서 "凡治國之道, 必先富民. 民富則易治也, 民貧則難治也"(범치국지도, 필선부민. 민부즉이치야, 민빈즉난치야) 곧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이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지만,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법령을 먼저 세울 것인가 예의를 먼저 마련할 것인가를 비롯해 무릇 주어진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정치에서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알고 실행한다면, 다스리는 길에 가까워진다. 바로 이것이 '近道(근도)'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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