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70> 不同而一

bindol 2021. 6. 2. 06:21

- 아닐 불(一-3)같을 동(口-3)어조 이(而-0)하나 일(一-0)

 

앞서 든 '순자' '영욕'편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므로 어진 이가 위에 있으면, 농사꾼은 힘을 다해 밭을 갈고 장사꾼은 잘 살펴 재물을 늘리고 공인들은 재주를 다해 기구를 만들며, 사대부로부터 제후들까지는 모두 어짊과 도타운 덕, 지혜와 능력으로 제 직분을 다하니, 이것을 '지극한 공평함'이라 한다. 따라서 어떤 이는 온 천하를 녹봉으로 받아도 스스로 많다고 여기지 않고, 어떤 이는 문지기나 객사지기, 관문지기, 야경꾼이 되어도 스스로 녹봉이 적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베어서 가지런히 하고 굽혀서 서로 좇게 하니, 같지 않으면서도 하나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세상살이의 도리'라 한다."

순자가 말한 두터움과 얄팍함은 직접적으로는 녹봉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문맥을 찬찬히 짚어보면, 예의와 의리를 분명히 하고 갖가지 제도를 마련하는 일에까지 이미 두터움과 얄팍함이 중요한 전제가 되어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신분의 등급에서 비롯된 尊貴(존귀), 어른과 아이의 구별인 長幼(장유), 지혜와 어리석음이나 유능과 무능에 따른 지위의 高下(고하) 따위는 모두 두터움과 얄팍함을 특수하게 또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이런 존귀나 장유, 고하 따위로 말미암아 맡아서 하는 일에 구별이 생기는 것 또는 생기도록 하는 것, 나아가 맡은 일에 따라 녹봉에 차이가 나는 것까지가 곧 예의고 의리다. 여기에 '不同而一(부동이일)' 곧 '같지 않으면서도 하나가 되는' 길이 있다.

결국 다양성과 통일성, 차이와 조화 따위에 대한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감각을 통치자나 정치가에게 요구하는 셈인데, 바로 이것이 순자 정치론에 숨겨진 주요한 부분이다.

물론 오늘날에 순자의 정치론을 문자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또 직업의 선택도 자유로운 시대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순자가 말한 녹봉의 다소나 후박에 담긴 의미와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양성이 마땅하다면, 또 다양성을 중시한다면, 그에 따른 차이 또한 마땅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두텁게 해야 할 일과 얇게 해도 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지극한 공평함'이 실현되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강조하는 '실력이 인정받는 사회,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도록 하려면 두터움과 얄팍함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먼저 깊어야 하고 또 널리 퍼져야 한다. 그런 뒤에야 정치와 행정, 제도 등을 통해 공평함이 실현될 것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