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늬 문(文 - 0)임금 제(巾 - 6)연줄 연(糸- 9)죄입을 좌(土 - 4)법 제(刀 - 6)
劉邦(유방)은 千辛萬苦(천신만고) 끝에 漢(한) 왕조를 일으켰으나, 왕조를 안정시키기도 전에 죽었다. 그를 이어 아들 惠帝(혜제)가 즉위했으나, 혜제는 심약한 탓에 모친인 呂太后(여태후)의 위세에 억눌려 있다가 재위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여태후가 권력을 장악하여 劉氏(유씨) 황족들을 배제하고 呂氏(여씨)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재편하려 했다. 그러나 여태후가 권력을 쥐고 황제 노릇을 한 지 8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유씨 황족들과 開國功臣(개국공신)들은 여씨 일족을 축출하고는 유방의 넷째 아들인 劉恒(유항, 기원전 180∼157년 재위)을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가 중국 역사상 명군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文帝(문제)다.
사마천도 문제를 매우 높이 평가했는데, 그것은 개국 초의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각종 정책을 적실하게 펼쳐 황실뿐만 아니라 제국도 안정시켰기 때문이리라. 특히 문제는 각종 惡法(악법)을 폐지하여 백성의 삶을 한층 윤택하게 하였는데, 緣坐制(연좌제) 폐지는 대표적인 조치였다.
문제는 즉위하던 해 12월에 이런 조서를 내렸다.
"법이란 다스림의 원칙으로, 포악함을 막고 사람들을 착한 쪽으로 이끄는 것이다. 법을 어겨 죗값을 치렀는데도 죄 없는 부모와 처자를 함께 緣坐(연좌)시켜 官奴(관노)로 삼으니, 짐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대하여 논의하라."
이에 담당 관리들이 하나같이 말하였다.
"백성은 자신과 집안을 스스로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법으로 금하는 것입니다. 연좌시켜 구류하거나 잡아들이는 것은 마음에 기억하게 하여 감히 법을 어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연원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문제가 말하였다.
"짐이 듣기에 법이 바르면 백성이 성실해지고, 죗값이 정당하면 백성이 따른다고 하였다. 牧民官(목민관)이라면 그들을 착한 쪽으로 이끌어야 하거늘 이끌지도 못하고 바르지 못한 법으로 죄를 다스리니, 이는 오히려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포악한 짓이다. 그래서야 어찌 범죄를 막을 수 있겠는가? 짐은 연좌의 좋은 점을 보지 못하였으니, 그에 대해 좀 더 따져보라."
담당 관리들은 모두 이렇게 아뢰었다.
"폐하께서 베푸시는 크신 은혜와 깊은 덕을 신들이 어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조서를 받들어 연좌와 관련된 律令(율령)들을 폐지하겠습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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