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95> 前王不忘

bindol 2021. 6. 3. 04:29

- 앞설 전(刀-7)임금 왕(玉-0)아닐 불(一-3)잊을 망(心-3)

 

권력을 휘두르거나 권위를 내세우기 좋아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감싸는 일을 그저 무르고 나약한 자나 하는 짓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누가 마음으로 그를 따르겠는가? 설령 따르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形勢(형세)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받들고 따르는 척할 뿐이다. 말 그대로 힘에 屈服(굴복)한 것이지 마음 깊이 따르는 心服(심복)은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권력이나 권위가 없다면,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등을 돌린다. 하물며 잊지 않고 그리워하겠는가? 이번 회에 소개하는 4-2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詩云: '於戲, 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시운: '오희, 전왈불망!' 군자현기현이친기친, 소인낙기락이리기리, 차이몰세불망야)

"시에서 '아아, 옛 왕들을 잊지 못하겠네!'라고 노래했다. 군자는 현명한 이를 현명하게 여기고 가까운 이를 가까이하며, 소인은 함께 즐거워해주면 즐거워하고 자신을 이롭게 해주면 이롭게 여기니, 이런 까닭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는 '시경' '周頌(주송)'의 <烈文(열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於(오)는 감탄사로 쓰이면 '오'로 읽는다. 따라서 於戲(오희)는 於乎(오호)와 같으며, 감탄이나 탄식하는 말이다. 賢(현)은 현명하다, 현명하게 여기다는 뜻이다. 親(친)은 가깝다, 가까이하다는 뜻이다. 군자는 정치를 맡아 백성을 다스리는 지배층 사람을, 소인은 백성이나 민중을 가리킨다. 沒世(몰세)는 세상을 떠나다는 뜻이다.

유가에서는 걸핏하면 堯(요)와 舜(순), 禹王(우왕)과 湯王(탕왕), 文王(문왕)과 武王(무왕)을 언급한다. 백성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정치의 요체임을 알고 실천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백성이 귀한 줄 모르고 자신들의 탐욕만 채우려 애쓰는 어리석고 그릇된 군주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니, 저 옛날의 聖君(성군)들을 끌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유자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심정이기도 하다. "아아, 옛 왕들을 잊지 못하겠네!"라는 노랫말에는 그런 심정이 담겨 있다.

그런데 저 성군들에게는 뛰어난 신하들이 있었다. 그들 홀로 천하를 다스린 것이 아니다. 사실 요와 순, 우왕과 탕왕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비록 '尙書(상서)'에서 거론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왕과 무왕은 역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周(주) 왕조의 창업주들이고, 유물로써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들 군주에게 공통된 것은 현명한 신하를 알아보고 기꺼이 기용했다는 점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