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22> 狡兎三窟

bindol 2021. 6. 3. 05:36

- 약을 교(犬-6)토끼 토(-5)석 삼(一-2)굴 굴(穴 -8)

 

 

풍훤이 설 땅에 가서 빚을 탕감하고 돌아온 뒤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제나라 閔王(민왕)은 세상의 비방에 현혹되어 맹상군의 명성이 자신보다 높아서 제나라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른다고 생각해 맹상군에게 말했다.

"과인은 선왕의 신하를 과인의 신하로 삼고 싶지 않소."

이리하여 맹상군은 벼슬에서 물러나 자신의 영지인 설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때 빈객들은 맹상군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모두 떠나갔다. 맹상군에게는 풍훤을 비롯한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쓸쓸히 설 땅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맹상군 일행이 아직 설 땅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영지에서 100리나 떨어진 곳까지 설 땅 백성들이 나와서 길을 메운 채로 맹상군을 맞이했다. 맹상군은 풍훤을 돌아보며 말했다.

"선생이 나를 위해 사온 의리가 무엇인지 오늘에야 알게 되었소!"

풍훤은 백성들에게 마음을 얻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덕을 베풀어야 한다. 빚 문서를 불살라버린 것이 바로 덕을 베푼 일이다. 맹상군이 계속해서 백성을 상대로 이자놀음을 했다면, 과연 돌아갈 곳이 있었을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을까?

맹상군이 설 땅에 이른 뒤에 풍훤이 말했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파놓는다는 '狡兎三窟(교토삼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도 굴이 세 개는 있어야 죽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군에게는 설 땅이라는 하나의 굴만 있습니다. 이것으로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누울 수 없습니다. 제가 두 개의 굴을 더 파드리겠습니다."

맹상군은 풍훤에게 수레 50대와 금 500근을 건네주었다. 풍훤은 이를 갖고 서쪽 魏(위)나라로 가서 위왕에게 유세했다.

"제나라가 重臣(중신) 맹상군을 내쫓았습니다. 그를 먼저 맞이하는 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위왕은 상국의 자리를 비워놓기 위해 본래의 상국을 상장군으로 삼은 뒤에 사자에게 황금 100근과 수레 100대를 주어 맹상군을 모셔오게 했다. 그러자 풍훤은 사자보다 먼저 돌아와 맹상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1000금은 대단한 예물이고, 수레 100대면 위세가 굉장한 사자입니다. 제나라에 이미 소문이 돌았을 것입니다."

위나라 사자가 세 번이나 오갔지만, 맹상군은 굳이 사양하며 가지 않았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