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33> 明堂과 王道

bindol 2021. 6. 6. 04:57

- 밝을 명(日-4)집 당(土-8)임금 왕(王-0)길 도(辵-9)

 

전국시대에도 제나라는 소금과 철 등 풍부한 물산의 생산과 유통으로 경제력을 탄탄하게 다졌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며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쪽 진나라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대등한 세력을 유지했다. 그 도성 臨淄(임치)는 전국시대 최대의 도시였다.

특히 威王(위왕)과 宣王(선왕) 때 강국으로 군림했는데, 도성의 성문인 稷門(직문) 곁에 學宮(학궁)을 지어 천하의 선비들을 모아들여서는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 학궁에는 맹자를 비롯해 騶衍(추연)·淳于髠(순우곤)·愼到(신도)·田騈(전변) 등이 출입하며 대부의 녹봉을 받았고, 순자는 그곳에서 세 차례나 祭酒(좨주)를 지냈다. 이렇게 융성하던 제나라도 선왕이 죽은 뒤로 기울기 시작했는데, ‘맹자’에 나오는 다음 대화에서 그 꼬투리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明堂(명당)을 헐라고 하는데, 헐어야겠소, 그만두어야겠소?”

맹자가 대답했다. “저 명당이란 것은 왕자의 사당입니다. 왕께서 王道(왕도)를 펴고자 하신다면, 헐지 마십시오.”

명당은 고대 중국에서 천자가 정치를 실행하고 모든 의례를 거행하는 건물이다. 특히 政令(정령)을 반포하고 제후들이 조회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천자의 정치와 의례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이 명당을 헐라고 하는 의견이 있었을까?

우선, 이 명당은 제나라 땅에 있었던 것을 가리킨다. 주나라 武王(무왕)이 상 왕조를 멸망시키고 천자가 될 때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강태공 呂尙(여상)이다. 그에게 제나라 땅을 주어 나라를 세우게 하면서 명당을 짓게 했다. 이는 제나라를 주 왕실에 버금가는 제후국으로 높인 것이다. 천자가 순행하여 제나라에 오면, 이 명당에서 천자의 의례를 거행하거나 다른 제후들을 불러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들어서자 주나라 왕실은 아주 몰락해서 간신히 명맥만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천자의 정치를 기대할 수 없었고, 또 천자가 순행할 일도 없었다.

그러니 명당을 어디에 쓰겠는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