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후 공(八-2)성 류(刀-13)클 태(大-1)임금 왕(王-0)
맹자가 선왕에게 왜 왕도정치를 실행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선왕은 자신에게 재화를 좋아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며 슬며시 꽁무니를 뺐다. 이쯤에서 물러설 맹자가 아니다. 맹자와 선왕의 문답은 계속 이어진다.
“옛날에 公劉(공류)는 재화를 좋아했습니다. ‘시경’ ‘대아’의 <公劉(공류)>에, ‘노적가리에 곳간이러니, 말린 양식을 싸서 전대와 자루에 넣도다. 백성을 화합시켜 나라를 빛내려고 활과 화살을 메고 방패와 창, 도끼, 큰 도끼 지니고 바야흐로 출정하려 하시네’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머무는 자에게는 노적가리와 곳간이 있고, 떠나는 자는 꾸러미와 자루가 마련된 뒤에야 비로소 출정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재화를 좋아하신다면, 백성들과 함께하십시오. 그렇다면 왕 노릇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과인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으니, 과인은 미인을 좋아하오.”
“옛날에 太王(태왕)께서는 여색을 좋아하셔서 그 부인을 아끼셨습니다. ‘시경’ ‘대아’의 <緜(면)>에, ‘古公亶父(고공단보)는 아침 일찍 말을 달려 서쪽 강가를 따라서 기산 아래에 이르렀도다. 이에 아내 姜氏(강씨)와 함께 살 곳을 살폈다네’라는 게 있습니다. 바로 그때는 안으로 남편 없는 여인이 없었고, 밖으로 지어미 없는 사내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미인을 좋아하신다면, 백성들과 함께하십시오. 그러면 왕 노릇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맹자는 선왕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與民樂(여민락)’을 강조했다. 위의 대화 또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백성들도 군주나 귀족들처럼 즐길 줄 아니, 그들에게도 즐길 수 있는 생활 조건을 충족시켜 주라는 말이다. 그런데 선왕은 발을 슬그머니 뺀다. 자신은 재화를 좋아하고 미인을 좋아한다면서. 세상에 재화를 좋아하지 않고 미인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는가?
군주라고 해서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이 좋아하는 것처럼 다른 모든 사람도 그러하므로 똑같이 좋아하며 즐길 수 있도록 힘쓰면 된다. 그게 정치고 통치인데, 아무래도 선왕은 어진 마음도 진정으로 패자가 될 마음도 없었던 모양이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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