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55> 仁親以爲寶

bindol 2021. 6. 7. 05:26

- 어질 인(人-2)가까이할 친(見-9)써 이(人-3)삼을 위(爪-8)보배 보(宀-17)

 


앞서 인용한 글에서 五伯(오백)은 五覇(오패)와 같은 말이며, 춘추시대에 유명무실해진 주 왕실을 대신하여 제후국들 사이에서 위세를 떨치고 신임을 얻어서 맹주로 군림한 다섯 군주를 가리킨다.

환공과 문공에 더하여 초나라 장왕과 오나라 합려, 월나라 구천 등이 그들이다. 이들 춘추오패는 단순히 힘과 위세만으로 패자가 되지 않았다.

이들도 정벌 전쟁을 벌였으나, 仁義(인의)를 저버린 나라를 대상으로 했다. 또 제후국들과 외교 관계를 맺을 때도 도리와 예의를 다 갖추었다.

순자는 특히 패자가 되려면 먼저 내치를 다져야 함을 분명히 말했다. 상벌의 기준이 엄정하고 공정해야 하며 군주가 자신의 말을 지키리라는 믿음을 먼저 신하들로부터 얻어야 하고 또 정령을 내리면 반드시 실행하여 백성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곧 내치에 힘써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런 내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제후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하여 외교나 전쟁에서 결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하물며 어찌 패자가 될 수 있겠는가?

결국 군주는 어짊과 올바름을 기준으로 삼아 통치하여야 하고, 그래야만 신하들도 어짊과 올바름에 입각해서 실무를 책임지고 백성을 위한 정치에 힘쓸 것이다.

구범이 “仁親以爲寶”(인친이위보) 곧 “어짊을 가까이하는 것을 보배로 삼는다”고 한 말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다.

구범이 ‘나라 잃은 사람’이라 한 것은 그가 나라를 잃고 망명한 공자 重耳(중이)를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중이는 晉(진)나라의 공자였다. 부친 獻公(헌공)이 驪戎(여융)을 멸망시키고 여희를 데려와서는 총애했다. 여희가 아들을 낳자, 헌공은 태자였던 신생을 멀리했다.

이에 여희는 아들 해제를 태자로 세우려고 음모를 꾸며 신생을 죽게 했고, 중이를 비롯한 여러 공자들은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

그러나 헌공이 죽자 대신들이 난을 일으켜 여희와 그 아들을 죽였다. 이미 태자도 죽고 공자들도 망명하는 바람에 군주의 자리가 비게 되는, 국가적으로 급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