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80> 固不贍也哉

bindol 2021. 6. 7. 05:54

- 참으로 고(口-5)아닐 불(一-3)넉넉할 섬(貝-13)어조사 야(乙-2)어조사 재(口-6)

 

춘추시대부터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생산 기술과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농업도 급속도로 발달했다. 제후국들이 부국강병을 이루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황무지 개간이 늘어나고 또 철제 농기구가 사용되면서 농업 생산이 크게 늘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군수 물자가 넉넉해야 했으므로 농업이 중시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제후국들에서 농업을 가장 중시하며 농업을 부국의 원천으로 생각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관중은 특이하게도 농업과 함께 상업을 중시했다.

관중이 상업을 중시한 것은 제나라가 바다에 인접해 있어서 산과 바다에서 풍부한 자원이 산출되었기 때문이다. ‘사기’ <화식열전>에 따르면, “제나라는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기름진 들은 뽕나무와 삼을 기르기에 알맞으며, 백성이 많고 무늬 있는 베, 비단, 생선, 소금 등이 생산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원이 많고 생산이 많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과 수급, 물가 조절, 가격과 유통 정책 등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당시로는 놀랍게도 그런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관중은 나라를 다스리면서 물가 조절 정책에 통달하지 않으면 경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백성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백성의 이익을 조절하지 못하면 경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니, 이렇게 해서는 큰 정치를 이룰 수 없다고도 했다. 예나 이제나 모든 사람의 관심사는 물가의 안정 여부다. 물가가 안정되지 못하면 가장 먼저 백성이 고통을 받는다. 백성이 고통을 받아서야 어찌 나라가 태평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군주나 관리들은 이를 잘 알아서 경제정책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관중은 2500년 전에도 그 중요성을 깊이 깨달아 ‘관자’에서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물가 조절의 문제를 다루었다.

‘관자’ ‘國蓄(국축)’에서 말했다. “歲適美, 則市糶無予, 而狗彘食人食; 歲適凶, 則市糴釜十糴, 而道有餓民. 然則豈壤力固不足而食固不贍也哉?”(세적미, 즉시조무여, 이구체식인식; 세적흉, 즉시적부십강, 이도유아민. 연즉기양력고부족이식고불섬야재?)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