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윤인현의 한시(漢詩) 기행] ④ 황학루에서 붓을 던진 이백(李白)

bindol 2021. 7. 25. 04:18

누각서 느끼는 애틋한 고향 그리움
시 전반부 인생무상 노래·후반부 '광경 묘사' 타향살이 읊어
선비, 주점벽 귤껍질로 학 그려 … 주막점 장사 번창 전설 눈길

▲ 각필정의 모습이다. 이백이 황학루에 와서 시를 쓰려 할 때, 머리를 들어 벽을 보니 최호의 시가 걸려 있었다. 이때 이백이 '눈앞의 멋진 경치를 보고서도 시를 짓지 못함은 최호의 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고는 붓을 놓았다는 그 각필정이다.

▲ 중국 호북성 무한시 황학산에 위치한 황학루이다. 황학의 전설을 담고 있는 누각이기도 하다.

▲ 황학루가 있는 황학산의 모습이다. 황학이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이 조각되어 있다.

 


최호(崔顥, 704~754)는 변주( 州), 현 하남성 개봉) 사람이다. 723년 진사가 되었고 사훈원외랑(司勋員外郎)을 역임하였다.

황학루는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이곳에 유람 왔다가 시흥이 도도해서 시 한 수를 짓고자 했으나, 최호의 <황학루>라는 시를 보고 붓을 던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황학루에는 '각필정(擱筆亭)'이라는 정자가 있으며, 최호는 이 시 한 편으로 불후의 시인이 되었다.

황학루가 있는 무한(武漢)은, 1949년 한구 ․ 무창 ․ 한양 등 세 도시가 합병되어 인구 300만 명의 도시이다.

우리나라 인천의 인구가 약 280만 정도이니, 인천만한 도시로 생각하면 된다. 최호의 <황학루>를 감상해 보자.

 

<황학루(黃鶴樓)> 최호(崔顥)

옛 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가 버리고,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이 땅에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아 있네.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황학은 한 번 가니 오질 않고,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흰 구름만 천 년토록 부질없이 감도네.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맑게 갠 냇가에 한양 땅의 나무들이 뚜렷이 보이고,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력한양수),

꽃다운 풀은 무성히 앵무주에 우거졌네. 芳草萋萋鸚鵡洲(방초처처앵무주).

날이 저물었는데 고향 땅은 어느 곳인가?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강안개 속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만 쌓이게 하네.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황학루>는 악양루, 등왕각과 더불어 강남 3대 누각의 하나이다.

<황학루> 전반부는 황학루에 얽힌 전설과 덧없는 인생을 노래하였고, 후반부는 황학루에서 내려다보는 광경 묘사를 통해 타향에서 느끼는 향수를 읊었다.

첫구의 '옛 사람이 황학을 타고 가버렸다'고 한 것은 황학루에 얽힌 전설이다. 황학루가 있던 자리에 신(辛)씨가 운영하던 주점(酒店)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젊은 선비가 와서 밥을 먹는데, 늘 외상이었다. 그 가난한 선비는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신씨 주점을 떠나면서 주점 벽에 귤껍질로 학을 그려 놓았다.

그 후 주점에서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면 벽에 귤껍질로 그린 황학이 나와서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그 지역 일대에 퍼져 매일 술 손님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자 주막집 주인은 금방 큰 부자가 되었다.

몇 년 후 그 선비가 돌아와서는 그 벽에 그려진 학을 보고 피리를 부니까 학이 벽으로부터 나와서 그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주막집 주인은 고마운 선비를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누각을 세웠다고 한다. 그것이 황학루이다.

황학루에서 양자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강의 지류인 한강으로 인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왼쪽은 무한이고, 오른쪽은 한양 땅이다.

<황학루> 내용을 보면, 맑게 갠 양자강만 보일 뿐 아니라 한양 땅 나무들도 뚜렷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강 가운데 앵무주의 섬과 그곳의 꽃다운 풀까지 다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앵무주'는 양자강 한복판의 모래톱으로 된 삼각주이다.

후한(後漢) 말년 강하 태수(江夏太守)였던 문인 예형이 황조(黃祖)에게 살해되어 묻힌 곳인데, 예형의 글 <앵무부>가 유명하여 이런 명칭이 생겼다.

그 앵무주가 지금은 없다. 양자강을 드나드는 대형 선박들에 지장이 있다고 하여, 우리의 한강에 있던 선유도처럼 없애버렸다. 앵무주나 선유도 모두 이제는 한시와 그림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섬들이다.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 쉽게 자연물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려받은 자연은 우리들 세대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하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교수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