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윤인현의 한시(漢詩) 기행] 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서시(西施)

bindol 2021. 7. 25. 04:23

빨래하던 절세미인 군주 총애받고 나라 어지럽히는구나

▲ 저라산 서시(西施) 옛 집 앞을 흐르는 완사계의 지금 모습이다. 계곡이 아니라 강(江)이었다.

▲ 저라산에 위치한 서시의 옛집인 서시전(西施殿) 안에 있는 서시의 모습이다. 하화신녀(荷花神女) 곧 '연꽃 신녀'라고 소개되어 있다.

▲ 서시의 옛집 안에 있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역들이다. '와신'은 오나라 왕 부차가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섶나무의 땔감 위에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이고, '상담'은 월나라 구천의 고사이다. 회계산에서 패한 구천은 갖은 수모를 당하고 천신만고 끝에 오나라에서 풀려난 뒤, 쓸개 맛을 보면서 재기를 다졌다. 그 양쪽 옆에 미인계라는 계책을 낸 범려와 문종 등이 있다.

 

왕유 '양귀비에 빠진 당 현종' 월나라 서시 빗대 비난
미모 사로잡힌 모습 한탄 … 경국 '선견지명' 드러내

중국 문학에는 4대 미인이 나온다.

춘추시대 말기의 월나라 미인 서시, 한나라의 왕소군, 삼국시대의 초선, 그리고 당나라의 양귀비가 그들이다.

월나라 서시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물고기들이 반하여 헤엄치는 것도 잊어버려 물속으로 가라 앉았다고해서 '침어(沈魚)'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시는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 오나라 부차에게 바쳤던 미인이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사를 돌보지 않아 마침내 월나라 구천의 침략을 받아 망한 군주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도 그들의 이야기이다. 먼저 서시(西施)에 관한 시 한 편을 감상해보자.

 

<서시영 西施詠)> 왕유(王維)

아리따운 미색을 천하 사람이 중히 여기니,
艶色天下重(염색천하중),

서씨같은 미인이 오래도록 한미하게 지냈겠는가?
西施寧久微(서시녕구미).

아침에는 월계의 빨래하는 여인이었다가,
朝爲越溪女(조위월계녀),

저녁에는 오나라 궁궐의 왕비가 되었네.
暮作吳宮妃(모작오궁비).

미천했을 때, 어찌 일반인과 다름이 있었겠는가?
賤日豈殊衆(천일개수중),

귀해지니 비로소 자신이 절색임을 깨닫게 되었네.
貴來方悟稀(귀내방오희).

사람들을 시켜 향분을 바르게 하고,
邀人傅脂粉(요인부지분),

스스로 비단옷도 제 손으로 입지 않았네.
不自著羅衣(부자저나의).

군주가 총애하면 교태 더욱 늘어나고,
君寵益嬌態(군총익교태),

군주가 어여삐 여기니 시비가 없었네.
君憐無是非(군련무시비).

지난 날 빨래하던 옛 친구들,
當時浣紗伴(당시완사반),

한 수레 타고 돌아갈 수 없어라.
莫得同車歸(막득동거귀).

과거 이웃집에 살던 여인들에게 알려주나니,
持謝家子(지사린가자),

찡그려도 어찌 나 서시처럼 될 수 있으리오?
效安可希(효빈안가희).



왕유의 <서시영(西施詠)>은 월나라 서시를 빗대어 양귀비를 총애하는 당(唐) 현종(玄宗)을 비난한 시이다.

오(吳)나라 부차가 월(越)나라 미인인 서시에 빠져 나라가 망했듯이, 당나라 현종도 양귀비에 빠져 있어 앞날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서시가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는 것을 통해 양귀비의 경거망동을 비난한 것이다.

서시는 완사계에서 빨래하던 시절 산골 아가씨의 분수를 잊어버린 채 당시 같이 했던 동료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 처지에 맞게 살 것이지 귀한 자리 넘보지 말라'며 거만하게 굴었다.

이는 출세한 후 옛 동료를 돌보지 않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군주가 총애해 주니 분수에 넘쳐 부탁해서는 안 될 나쁜 일까지도 관여하고, 군주의 혜안을 흐리게 하여 오나라가 망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지금 당나라도 양귀비라는 미인에 빠져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나라 시인 왕유가 시에서 바라본 서시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여인이었다.

당(唐)나라 왕유(王維, 701~761)는 안록산의 난(755)이 일어나자 서촉으로 피난 가는 현종을 따르지 않고 장안에 머물다가 안록산의 군대에 협력자가 되어 죽음직전에 아우 왕진의 도움으로 풀려났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난(亂)이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경국의 조짐을 읊은 것이다.

따라서 <서시영>은 시불(詩佛) 왕유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을 드러내면서 춘추 말기 월나라의 미인 서시의 이야기를 통해, 당나라의 현종의 경국지색까지 잘 드러낸 시이다.

/인하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교수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