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亨吾道 以道之

bindol 2021. 9. 21. 05:32

天이 阨我以遇어든 

吾는 亨吾道하여 

以道之하면 

天且我에 奈何哉리요

 

도를 형통하여 액을 뚫으면 하늘인들 또 내게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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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의 말씀이다. 내가 ‘채근담’(홍자성)을 처음 읽은 것은 불교철학과 강의실에 앉아 있던 20대 중반, 삶과 죽음의 이치며 운명에 대해 알고 싶었던 때였다.

“하늘이 내게 박복으로써 대하면 나는 내 덕을 두텁게 하여 그것을 맞이할 것이며, 하늘이 내게 몸으로써 고달프게 하거든 나는 내 마음을 편안히 가져 그것을 보충할 것이며, 하늘이 내게 액을 주시거든 나는 도(道)를 형통해 그것을 뚫으면 하늘인들 또 내게 어찌하겠는가?” ‘채근담’의 그 마지막 구절에 나는 붙들리고 말았다. 덕을 두텁게 하고 마음을 편안히 가져 박복과 고달픔은 보충한다고 하더라도 막힌 액은 어떻게 뚫나? 그것을 뚫고 싶었다. 도란 무엇인가? 고전을 들추기 시작했다. 노자는 도의 본체를 ‘도덕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는 도라고 할 수 있으나 항상한 도는 아니고,

이름(名)은 이름 지을 수 있으나 항상한 이름이 아니다(제1장).”

 


대자연의 본체를 굳이 표현하자면 ‘도’라 하나 표현된 ‘도’나 ‘이름’은 이미 본체가 아니요, 형상도 이름도 없는 본체를 굳이 또 표현하자면 무(無)라고 한다. 이 때문에 항상한 ‘없음’으로 그 묘한 본체세계를 보아야 하고, 항상한 있음(有)으로 현상세계를 보고자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같은 데서 나와 이름이 달라진 것뿐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 같음(有·無)을 현묘하다고 하며 온갖 ‘묘용(妙用)의 문’이라고 칭송했다. 즉, 무의 본체와 유의 현상을 같이 보아야 진정한 도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노자의 유와 무, 불교의 공(空)과 색(色), 그리고 주역의 음과 양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 문화일보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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