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무릇 있는 모든 相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相이 相 아닌 것으로 보면 곧 如來(眞理)를 보게 되리라
‘금강경’의 핵심어로서 진여와 실상이 같은 진리임을 여실히 보아야 한다는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의 말씀이다.
“신상(身相)을 가지고 여래(진리)를 볼 수 있겠느냐”고 붓다가 묻자
수보리는 “신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상은 곧 신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자 붓다께서 이때 하신 말씀이다.
존재하는 온갖 모습은 다 허망한 것이니 모든 상(相=현상)에서
상 아닌 비상(非相=본체)을 보면 곧 여래를 본다고 한 것이다.
여래(如來)란 법신(法身) 비로자나불로서 영원히 변치 않는 만유의 본체,
법성(法性) 혹은 진리를 말한다.
색신(色身)은 형상으로서 상(相)이 있으나, 법신(法身)은 성(性)으로서 모양이 없다.
상(相)에서 비상(非相)을, 색(色)에서 공(空)을 함께 보아야 여래(도·道)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다.
박종홍 교수가 실존사상에 대해 물으려 하이데거를 찾아갔을 때
‘금강경’을 보라고 했다는 말에 감동해 공부를 발심한 것은 1960년 겨울이었다.
김동화 박사의 강의를 듣고도 근기가 부족한 나는 알 듯 모를 듯 60여 년을 지내오다가
‘금강경오가해’가 큰 지침이 되었다.
특히 야보(冶父) 선사의 시적 운문으로 된 게송을 좋아한다. 그는 이 대목을 이렇게 설파했다.
“어떤 모습이 있다 하여 찾는다면 모두 거짓.
형상 없어 못 본다면 이것 또한 삿된 소견. (…) 있음에 집착하고,
없음에 집착하는 것은 모두 함께 삿된 소견이 되니
‘있음’과 ‘없음’에 집착하는 것이 둘 다 없어야 한 맛으로 법신이 항상 드러나리라.”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