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한 삼태기의 흙

bindol 2021. 9. 21. 06:38

爲山九刃 公虧一匱

높은 산을 쌓는 데 있어 한 삼태기의 흙 때문에 그 공을 잃는다

 

‘서경’(書經)에서 만날 수 있는 구절이다. 산을 쌓는 데 있어 구인(九인)의 높이에 달하게 됐더라도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면 이제까지의 공은 허사가 되고 만다는 것을 경계한 소공(召公)의 말씀이다. ‘구인’이란 72척이나 되는 높은 산을 말한다. 흙 한 삼태기만 덮으면 끝나는데 왜 흙 나르기를 그만뒀을까? 도중에 포기해 완성을 보지 못한 경우, 그런 후회는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주자(朱子)는 ‘중용’을 읽다가 ‘사람이 한 번 읽어 알면, 나는 백 번을 읽는다. 사람이 열 번 읽어 알면 나는 천 번을 읽는다’는 구절을 읽는 순간 몸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힘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서 나도 뜨거운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지식이나 재미로 읽는 책보다는 속(俗)된 기질을 다스려주는 ‘고전 읽기’에 뜻을 두었으나 꾸준하지 못한 나는 선인들의 독서법에 내 ‘공휴일궤’의 허물을 반성하게 된다.

김일손은 한유의 문장을 천 번 읽었고, 윤결은 ‘맹자’를 천 번 읽었으며, 차운로는 ‘주역’을 오천 번 읽었고, 유몽인은 ‘장자’와 유종원의 문장을 천 번 읽었다고 한다. 그냥 독서로는 공부가 되지 않는다. 열 번을 읽어 알지 못하면 백 번을 읽어야 하고 백 번을 읽어도 모르면 천 번을 읽어야 한다. 글의 속뜻이 의중에 와 닿아야 한다.

우물을 팠으면 샘물을 얻어야 하듯. 맹자도 같은 말씀을 남겼다.

“掘井九(굴정구인) 而不及泉(이불급천) 猶爲棄井也(유위기정야)”(‘맹자’)

아무리 구인의 깊이까지 우물을 팠다 해도 샘물이 나는 곳까지 파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물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내가 샘물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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