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호손의 白碑

bindol 2021. 10. 24. 04:47

그가 오래 살아서 허옇게 늙은 주검으로, 늙어버린 아내 페이스와 자녀들, 손자, 그리고 많은 이웃이 애도의 행렬을 지은 가운데 무덤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그의 묘비에 아무런 희망의 시를 새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암울하게 죽어 갔으므로.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의 소설 ‘젊은 굿맨 브라운’의 결구다. 굿맨 브라운은 어느 날 밤, 낯선 사내와 동행이 되는데 그는 브라운의 조부가 세일럼 거리에서 퀘이커교도 여인을 채찍질했으며 브라운의 부친은 필립왕 전쟁 때, 인디언 부락에 불을 질렀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지금 악마의 검은 미사에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와 함께 미사 장소에 가 보니 교회 지도자들과 마을 사람들, 아내까지도 검은 미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의 위선과 독선을 목격한 브라운은 아내까지도 의심하는 냉소적 인간으로 변해 세일럼 마을로 돌아온다. 이 글의 결미에는 ‘묘비에 아무런 희망의 시를 새기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나는 콩코드의 슬리피홀로 묘역을 찾은 적이 있다. 반월형의 하얀 묘비에는 과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너무나 작고 간단했다. 단지 호손(HAWTHORNE)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생몰 연월일조차 기록돼 있지 않았다. 그는 왜 자신의 성에 W를 덧붙여 Hathorne을 Hawthorne으로 바꿔 썼을까? 그의 증조부 윌리엄 호손은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와 세일럼의 치안판사가 되어 퀘이커교도를 박해하고 그의 숙부들은 마녀사냥과 인디언 대학살에 참가했다. 호손은 자신의 소설 ‘일곱 박공의 집’에서 조상의 죄를 폭로하고 몹시 괴로워했다. 이 집의 주인인 핀치온 대령(작가의 증조부)은 가난한 머시 몰의 땅을 빼앗고 그를 마녀잡이란 명목으로 교수대에 세웠다. 몰은 죽어가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피를 마시게 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호손의 백비(白碑) 앞에서 나는 그의 고해성사를 듣는 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필가

'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돈의 죽음  (0) 2021.10.24
사어의 시간(尸諫)  (0) 2021.10.24
노인과 바다  (0) 2021.10.24
神性의 원형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0) 2021.10.24
변화의 주재자가 신(神)이다  (0) 202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