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산책] 시력을 잃고 나서도 400편 넘는 논문을 냈어요
레온하르트 오일러
▲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초상화입니다. /위키피디아
1707년 4월 15일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태어났습니다. 오일러는 수학 역사에서 가장 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긴 수학자인데요. 두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았을 때조차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해요. 오늘은 수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꼽히는 오일러에 대해 알아볼게요.
오일러는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아카데미에서 수학을 연구했는데요. 1735년 프랑스 과학원으로부터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다른 수학자들이 몇 달이 걸려 답을 찾고 있었던 이 문제를 오일러는 단 2박 3일 만에 풀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과로로 심한 열병을 앓았고 결국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고 말았어요. 그는 시력을 잃고도 "이제 덜 산만해졌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수학 외에 다른 것이 덜 보이니 수학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거죠.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은 지 31년이 지난 1766년 그는 백내장에 걸려 왼쪽 눈의 시력마저 잃어요. 신기한 건 그는 두 눈의 시력을 잃고 나서 오히려 더 왕성한 연구 활동을 했어요.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처럼요. 그는 어떻게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연구를 계속했을까요? 오일러는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해요. 한 번 읽거나 들은 내용은 완벽하게 기억해냈어요. 몇 년 전 읽었던 책도 페이지를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정도였죠. 그는 아들이나 후배 학자들, 비서에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공식들을 받아적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기록했어요. 오일러는 시력을 잃고 나서도 400편이 넘는 논문을 썼어요.
오일러는 76세였던 1783년 9월 18일 밤, 죽는 순간까지도 수학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오일러는 친구 가족과 천왕성의 궤도를 계산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는 차를 마시던 중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콩도르세는 마지막까지 수학과 함께한 오일러의 죽음에 대해 "오일러는 사는 것과 계산하는 것을 동시에 중지했다"라고 묘사했어요.
오일러는 18세 때 최초의 수학 논문을 쓴 이후로 수많은 논문을 남겼습니다. 그는 논문을 정말 빨리 썼는데요. 저녁 식사를 하기 전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논문 한 편을 완성하기도 했어요. 1911년 스위스 자연과학학회는 오일러의 연구 결과를 수집하는 기념사업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오일러가 발표한 866편의 논문과 책이 수집됐는데요. 300~600쪽에 달하는 큰 책 90권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수학사에 오일러가 남긴 업적은 정말 많아 언급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함수 기호 f(x)도 오일러가 처음 사용했답니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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