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신라의 아들'

bindol 2021. 11. 4. 04:40

660년, 신라와 백제의 황산벌 전투… 신라 장군 아들 반굴이 홀로 전사하자 16세 화랑 관창도 혼자 적진 향했어요
백제군 5000여명에게 연패하던 신라군… 반굴·관창의 죽음에 사기 높아져 승리

최근 두 명의 유명한 아버지가 아들 때문에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어요. 한 명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도지사이고, 다른 한 명은 중국 영화배우예요. 도지사의 아들은 군대에서 후임병을 폭행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중국 영화배우의 아들은 마약의 일종인 대마초를 피우는 죄를 지었지요. 물론 우리 역사 속에도 왕이나 높은 관직에 있던 아버지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고 못된 짓을 저지른 아들들이 있어요. 하지만 정반대로 아버지의 뜻과 명예를 더욱 빛나게 해 준 아들도 있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660년 백제군과 신라군 사이에 벌어졌던 황산벌 전투에 등장해요.

◇5000명의 백제군과 5만명 신라군이 맞선 황산벌 전투

660년,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은 신라가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했어요. 소정방이 이끄는 13만의 당나라 군사는 바다를 건너, 김유신·김흠순·김품일 등이 지휘하는 신라의 5만 군사는 육로를 통해 백제의 도읍인 사비(지금의 부여)로 진격했지요. 그러자 백제의 장수 계백은 5000여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신라군을 막기 위해 황산벌(오늘날의 충남 논산시 연산면 일대)로 나아갔어요.

"옛날 중국 월나라의 왕이었던 구천은 5000명의 군사로 오나라 왕 부차의 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가 많고 적음에 달린 게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정신에 있다!"

 /그림=이창우

계백 장군의 말에 큰 용기를 얻은 백제군은 비장한 각오로 전투에 나섰어요. 그 결과 5000여명의 백제군은 5만의 신라군과 네 차례 싸움을 벌여 모두 승리하였지요. 군사 수가 훨씬 많음에도 전투에서 번번이 패하자 신라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어요.

◇홀로 적진으로 뛰어든 신라의 장수

이때 신라의 한 장수가 전투에 함께 나선 아들을 불러 말했어요.

"충효(忠孝)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충(忠)은 신하가 되어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효(孝)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급한 때에 목숨을 바치는 것은 충효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예.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들을 불러 충성을 맹세하게 한 사람은 김유신과 함께 신라군을 이끈 김흠순 장군이었어요.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백제 정벌에 나선 반굴이었고요. 아버지의 뜻을 받든 반굴은 말을 타고 홀로 적진을 향해 나아갔어요. 그리고 용감하게 백제군과 싸우다가 최후를 맞습니다.

◇반굴의 뒤를 따라 적진에 뛰어든 16세 소년

"아들아, 반굴의 행동을 보며 진정한 용기와 충효에 대해 깨달았느냐?"

반굴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신라의 장수가 아들을 불러 말했어요.

"예, 아버지. 저도 용감히 나가 싸우겠습니다."

 /그림=이창우그의 아들 역시 반굴처럼 말을 타고 홀로 적진에 뛰어들었지요. 그는 16세 어린 나이로 아버지와 전투에 참가한 관창이었어요. 관창의 아버지는 좌장군으로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을 지휘하던 김품일 장군이고요. 관창은 나이가 어렸지만, 화랑으로서 말을 타고 활 쏘는 실력이 뛰어나 백제와의 전쟁에 나설 만한 인물로 왕에게 추천되었다고 해요. 왕은 관창을 아버지 김품일을 보좌하는 장수로 임명하였지요. 하지만 적진으로 뛰어든 관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제 군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너는 아직 어린아이가 아니냐? 네 용기가 가상하여 돌려보내 줄 테니 다시는 전투에 나서지 말아라."

백제의 계백 장군은 어린 관창의 용맹을 높이 사서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어요. 그러나 관창은 신라 진영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적진으로 뛰어들었고, 또다시 백제군에게 붙잡히고 말았지요. 계백 장군은 이번에는 그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돌려보냈어요.

◇죽음으로 신라군의 사기를 높인 반굴과 관창

반굴과 관창의 죽음은 신라군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어요. 두 인물의 충성심에 감동한 신라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총공격을 펼쳤습니다. 5만이라는 신라군과 대적하기에는 백제군의 수가 너무 적었어요. 더구나 반굴과 관창의 죽음으로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신라군의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지요.

결국 계백 장군과 백제의 5000여명 결사대는 모두 전사하고 말아요. 황산벌 전투 이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사비성을 함락했고 백제는 멸망의 길을 걷습니다.

황산벌 전투에서의 김흠순과 반굴, 김품일과 관창의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 7권에 실려 있어요. 그런데 그 책에는 심나와 그의 아들 소나, 찬덕과 그의 아들 해론의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소나와 해론 또한 아버지의 용기와 뜻을 따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인물이랍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데는 당나라와의 연합이 큰 역할을 했어요. 나당(羅唐) 연합이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보고, 나당 연합이 삼국 통일에 미친 영향을 탐구해 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전덕재 | 교수(단국대 사학과)·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