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의 탄생 예언한 도선 스님, 풍수지리에 따라 새집 짓게 했어요
군대 지휘법·풍수 등 직접 가르치기도…
왕건, 불교의 도움 받았다 여겨 받들며 고려의 후대 왕에게 '훈요십조'로 당부
지난달 말 서울 도봉산 기슭에서 고려 초기의 국보·보물급 불교 유물들이 우르르 출토됐어요. 그중에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이라는 유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요. 둘 다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로, 금강저는 작은 방망이처럼 생겼으며 금강령은 금강저의 한쪽 끝에 방울을 달아놓은 형태예요. 그러고 보니 팔만대장경, 탱화(幀畵·불교 신앙 내용을 담은 그림) 등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에는 불교 문화재가 참 많은 것 같지요? 왜 그럴까요?
고려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불교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예요. 그 이유는 고려를 세운 왕건에게서 찾을 수 있답니다. 왕건은 불교의 도움으로 자신이 고려의 왕이 되었다고 믿었대요. 그래서 불교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요. 그렇다면 왕건은 대체 무슨 일로 자신이 불교의 도움을 받아 왕이 되었다고 믿었을까요?
◇왕건 탄생을 예언한 도선 스님
800년대 중반 지금의 황해도 개성시인 경기도 북서부 송악산 남쪽 기슭에 왕륭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왕륭은 집안 대대로 이어온 중국 무역으로 많은 재산과 큰 세력을 얻었지요. 왕륭이 한씨 성을 가진 여인과 결혼하여 살던 어느 날, 도선이라는 스님이 그의 집 앞을 지나며 말했어요.
▲ 그림=이창우
"기장을 심을 터에 어찌 삼을 심었는가? 안타깝도다!"
이 말은 귀한 식물을 심어야 마땅한 땅에 어찌 하찮은 식물을 심었느냐는 뜻이었어요. 도선 스님의 말에서 기장은 왕을 의미했거든요. 왕륭의 아내는 급히 남편에게 달려가 이 말을 전했어요. 스님의 말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왕륭은 스님을 쫓아갔습니다.
"스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자 도선 스님이 왕륭에게 말했어요.
"지금 사는 집은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 곳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일러주는 대로 집을 새로 지으면, 내년에 반드시 슬기로운 아이를 얻을 것입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륭이 공손하게 대답하자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도 해주었어요.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건(建)'이라고 하십시오."
왕륭은 도선 스님이 일러준 대로 새집을 지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왕륭의 아내가 임신하여 열 달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왕건이에요. 그때가 877년 1월이었습니다.
◇"하늘이 정한 좋은 자리에서 태어났으니…"
도선 스님은 통일신라 말기의 승려예요. 풍수지리(風水地理) 사상을 펼친 것으로 이름난 인물이지요. 풍수지리란 산이나 땅의 모양, 물의 흐름 등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연결 짓는 사상이에요. 도읍지나 궁궐, 마을이나 집, 절이나 묘의 자리를 정할 때 어디가 좋고 나쁜지를 따지는 것이지요. '편년통록(編年通錄)'이라는 고려시대 역사책에 따르면 왕건의 탄생을 예언한 도선 스님이 왕건이 열일곱 살 되던 해 송악에 찾아와 이렇게 말했대요.
"당신은 혼란한 때에 맞춰 하늘이 정한 좋은 자리에서 태어났으니, 사람들은 당신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들을 구제하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소."
그러면서 왕건에게 군대를 지휘하고 진을 치는 법, 산천의 모양새를 보고 이치를 헤아려 좋은 지형을 선택하는 법, 적당한 시기를 고르는 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고 해요.
◇고려 건국한 왕건, 불교 진흥에 힘써
도선 스님의 예언 때문이었을까요?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왕조를 세웠어요. 그리고 왕권을 안정시켜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자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지요. 지방 세력인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호족의 딸들과 혼인하는 '혼인 정책'을 펼쳐 29명의 부인을 두기도 했어요. 고구려를 계승하는 나라답게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북진 정책'을 펼치며 한반도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려고 애썼습니다.
또한 자신이 불교와 풍수지리의 도움을 받아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불교를 받들며 풍수지리를 따르는 정책도 펼쳤지요. 그가 후대의 왕에게 전하는 열 가지 당부를 담은 '훈요십조(訓要十條)'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어요. 훈요십조에는 ▲국가의 대업은 여러 부처님의 도움을 받은 것이니 불교를 진흥시키되, 승려들의 사원 쟁탈을 금지할 것 ▲연등회는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고, 팔관회는 토속 신을 섬기는 것이니 이를 경건하게 잘 치를 것 ▲지금 세워진 절들은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맞춰 정해 놓은 것이므로 함부로 더 세우거나 줄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 담겼거든요. 어때요? 고려를 세운 왕건이 불교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잘 알겠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왕권을 강화하고자 사심관제도 등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어요. 고려 건국 후 왕건이 실시한 왕권 강화책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감수=정병삼 |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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