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6·25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인천상륙작전

bindol 2021. 11. 4. 04:42

한국에 파병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상륙작전에 불리한 지형인 인천 선택
적의 예상을 깬 기습 공격으로 작전 성공시키고 수도 서울 되찾아
중부지방의 관문 도시인 인천… 삼국시대엔 '미추홀'로 불렸어요

요즘 아시아인의 눈길이 우리나라 항구도시 인천에 쏠려 있어요. 지난 19일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개막하였기 때문이지요. 17회째인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아시아 45개국 선수들이 참가하여 16일간 36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룹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어린이들은 '인천' 하면 퍼뜩 떠오르는 역사적 사건이 있을 거예요. 바로 '인천상륙작전'이지요. 상륙(上陸)작전이란, 바다에서 적의 해안으로 올라가 공격하는 작전을 말해요. 과연 인천에 누가 상륙하여 누구를 공격한 것일까요?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진 1950년으로 함께 가 봐요.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구소련으로부터 전차와 대포 등 무기를 지원받아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략했어요. 북한군의 기습 공격에 한국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든요.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반도를 무력으로 공산화하고자 남쪽으로 진격해 갔어요.

그러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의 남침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우리나라에 군사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유엔군 파병을 결정하였습니다. 16개국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의 총사령관으로는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임명되었지요. 한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정하고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 기회를 마련했어요.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 주력 부대의 뒤쪽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상륙작전을 구상했습니다. 상륙작전을 펼칠 곳으로는 인천을 생각했지요. 그런데 유엔군 총사령부 참모들과 해군·해병대 장교들이 이 작전을 반대하고 나섰어요.

 /그림=이창우

"인천은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갈 때의 높이 차이가 무척 심해서 상륙작전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또한 지형적으로, 인천에 상륙하기 전 먼저 월미도를 점령해야 합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에서도 맥아더 장군에게 상륙작전 장소를 인천 대신 전라북도 군산으로 하라고 권하였다고 해요.

◇"인천이 상륙작전을 펴기에 적당합니다"

그러자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어요.

"인천은 지형과 자연조건이 상륙작전을 펴기에 불리하므로 북한군도 인천 해안에 대한 방어를 소홀히 할 것이니, 그 허점을 찔러 기습할 수 있소. 또한 인천은 서울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라 유엔군이 한번 이 지역을 장악하면 북한군의 보급품과 병력이 이동하는 수송로를 끊어 가장 이른 시일 안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오."

맥아더 장군이 강력하게 인천상륙작전을 주장하자, 결국 8월 28일에 미국 합동참모본부도 이 작전을 승인하였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 인천이 아닌 군산과 동해 삼척 부근에 포격을 가했어요. 북한군에게 상륙작전 장소를 속이기 위해서였어요. 유엔군이 군산에 상륙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북한군에 흘리기도 하였고요. 이렇게 적군을 속이는 전략은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9월 15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15일 새벽, 함정 206척, 군사 7만여명을 동원한 유엔군의 상륙작전이 인천 월미도와 주변 해안에서 전개되었어요. 물론 우리나라 군대도 이 작전에 참가하였고요. 그 결과 유엔군과 우리 군대는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 비행장을 세력 아래 두며 수도 서울을 되찾는 발판을 마련하였지요. 9월 28일에는 마침내 수도 서울을 탈환하며 작전을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미추홀·소성·경원·인주는 인천의 옛 이름

 /그림=이창우인천상륙작전의 무대가 되었던 인천은 서해안과 한강 하류 지역을 끼고 있으며, 서울 바로 옆에 자리하여 중부지방의 관문 역할을 한 도시예요. 인천항은 부산항과 원산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문호를 개방한 항구인데, 일본과의 불평등조약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어요. 개항 후 일본·청·영국·러시아 등의 영사관이 설치되었지요.

인천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종 때인 1413년에 처음 생겨났어요. 고려시대에는 '경원' '인주' 등으로 불렸는데, '인주'라는 지명이 조선시대에 '인천'으로 바뀐 것이에요. 통일신라시대에는 '소성', 삼국시대에는 '미추홀' 또는 '매소홀'로 불렸고요. 고구려 주몽의 아들이었던 비류가 동생 온조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서쪽 바닷가에 도읍을 정하고 '미추홀'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하는데, 이곳이 바로 지금의 인천 지역이라고 해요. 이처럼 역사 깊은 도시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 마지막까지 잘 치러져, 인천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우뚝 서는 데 큰 보탬이 되길 기대해요.


[함께 생각해봐요]

아시안게임을 비롯하여 하계·동계올림픽, 월드컵 축구대회 등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가 참 많아요.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 대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각각의 대회가 생긴 유래를 살펴보세요. 또 이러한 대회가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생각해 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임학성 | 감수·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