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한글날'의 옛이름은 '가갸날'

bindol 2021. 11. 4. 04:44

한글 반포 480주년인 1926년 지정
세종대왕, 건강 나빠져도 아랑곳없이 비밀리에 한글 만드는 데 힘썼어요
읽고 쓸 줄 모르던 백성 돕기 위해 반대 무릅쓰고 1446년 훈민정음 반포

이번 주 목요일(9일)은 한글날이에요. 한글이 만들어진 것을 기념하며, 그 우수성을 기리는 날이지요.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여러분도 잘 알지요? 맞아요.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이 우리글 '훈민정음'을 만들어 1446년에 반포하였답니다. 훈민정음은 1910년대 초 국어학자인 주시경에 의해 '한민족의 글' 또는 '큰 글'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한글'로 불리게 되었지요. 한글날은 1926년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하여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가,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고요. 그렇다면 훈민정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 궁금증을 해결하러 조선시대로 역사 여행을 떠나볼까요?

◇세종이 비밀리에 창제한 훈민정음

1443년 12월, 세종대왕이 신하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어요.

"과인이 직접 글자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소. 간단한 글자이지만 수없이 많은 말을 표현할 수 있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글자)'라는 뜻을 담아서 이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지었소."

 /그림=이창우

이 발표에 신하들은 깜짝 놀랐어요. 임금이 우리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지요.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에 직접 나섰는데, 이 일을 아주 비밀리에 진행했거든요. 세종은 우선 믿을 만한 신하에게 지시하여 우리 조상이 사용한 언어는 물론 중국·인도·몽골·티베트·일본 등 세계 각국의 언어에 대한 자료와 책들을 직접 구해오게 했습니다. 그다음에 그 책들을 참고하여 눈병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글자를 연구하고 만드는 일에 매달렸어요. 눈병이 심해져서 치료 차 지방으로 요양을 갔을 때도 글자 연구에 필요한 책과 자료를 가지고 갔을 정도였지요. 건강이 나빠지자 1436년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되살리고, 1442년 첨사원(詹事院)을 설치하여 세자인 향(훗날의 문종)에게 나랏일을 맡기면서도 한글 창제에 끝까지 힘을 쏟은 것으로 짐작돼요. '의정부서사제'란 육조(六曹·나라의 정무를 맡아보던 6개 중앙 관청)의 업무를 국왕이 직접 관장하지 않고, 의정부 정승들을 거쳐 국왕에게 올라가게 한 제도를 말합니다. 그런데 세종은 이토록 중요하게 여긴 한글 창제 작업을 왜 비밀리에 진행하였을까요?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합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발표하자, 집현전 부제학이던 최만리 등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상소를 잇달아 올렸어요.

"우리 조선은 예로부터 중국의 예법과 제도를 본받아왔고, 이미 한자를 널리 쓰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중국에서 이를 알게 된다면 중국에 비난을 당하여 부끄러울 것입니다."

"한자와 다른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무리는 몽골, 여진, 일본 등 오랑캐들뿐입니다. 우리가 이들처럼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쓴다면 중국을 따르는 것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림=이창우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상소의 내용 중에는 훈민정음을 익히는 것은 학문에 방해되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다는 주장도 있었어요. 훈민정음은 간단하고 배우기가 쉬운 문자였기 때문에, 백성이 글자를 알게 되어 나라의 법과 제도를 업신여기고, 학문을 공부한 선비들을 함부로 대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양반들도 있었고요. 세종대왕이 우리말에 어울리는 우리 글자를 왜 비밀리에 만들려고 했는지 이제 짐작되지요? 상소의 내용에서 보듯, 이에 대한 반발이 몹시 거셀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에요.

◇백성을 생각한 세종대왕의 곧은 마음

세종대왕이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반포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세종대왕은 농사를 잘 짓는 방법, 시간과 날짜를 제대로 세는 방법, 간단한 병을 치료하는 법, 도덕과 예절을 잘 지키는 법 등을 책으로 엮어서 백성이 이를 배우고 익히게 하여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책을 만들어도 백성이 글자를 모르면 읽을 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이었지요. 또한 백성이 글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관아에 제대로 호소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토지나 재산을 못된 관리나 권력자에게 억울하게 빼앗기는 일도 많았어요. 이를 항상 안타깝게 여겼던 세종대왕은 백성 누구나 글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에요.

세종대왕은 여러 반대 의견을 물리치고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했어요. 정인지 등 8명의 학자에게 훈민정음 사용법을 설명한 책을 만들게 하여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그리고 백성이 꼭 알아야 할 지식을 담은 책도 훈민정음으로 제작하여 널리 읽히게 하였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후에도 양반들은 계속해서 한자를 썼어요. 한글을 '언문(諺文)' 등으로 낮춰 부르며 무시하였지요. 초기에는 궁궐이나 양반 집안의 여성들이 한글을 주로 썼다고 해요. 그런데 한글은 어떻게 온 국민이 쓰는 우리글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훈민정음 반포 이후 한글의 발달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한희숙 | 교수·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