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고구려 '경당'에서 시작된 우리 도서관

bindol 2021. 11. 4. 04:45

고구려 소수림왕, 국립대 태학 세우자 평민 교육기관 겸 도서관인 경당 유행
고려 땐 과거제 실시해 책 수요 늘어… 조선의 집현전·규장각은 궁궐 도서관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전국 도서관에서 어린이 글쓰기 대회, 독서 대회, 문화 예술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 폴리테크닉대학에는 책이 한 권도 없는 도서관이 생겨 화제가 되었지요. 종이책 대신 전자책만 구비한 전자도서관이거든요. 지난 1일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대학은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 관련 자료를 수집·보관한 동아시아도서관을 새단장하여 재개관했고요.

독서의 계절답게 도서관에 대한 소식이 참 풍성합니다. 이런 뉴스를 듣다 보니, 문득 우리 역사 속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었을까 궁금해지지 않나요? 옛 도서관을 찾아 역사 여행을 떠나봅시다!

◇나라의 기틀 다진 고구려 소수림왕

371년 고구려 제17대 왕인 소수림왕이 즉위하였어요. 그는 아버지인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사망하면서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랐지요. 소수림왕은 신하들과 진지하게 나라의 장래를 의논하였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고구려를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나라의 힘을 키워야겠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수준 높은 종교를 받아들여 백성의 마음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나라가 어수선해질지 모르니,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규범을 갖춰야 합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합시다."

 /그림=이창우

소수림왕은 중국의 전진(前秦)에서 불교를 받아들이고,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 법률인 율령을 새로 만들어 반포하였어요. 그리하여 소수림왕은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지요. 또한 율령을 반포하기 한 해 전인 372년에 '태학(太學)'이라는 국립대학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귀족, 즉 상류층 자녀만 입학할 수 있는 국립대학이었지요. 주로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문학과 역사, 무예 등을 가르쳤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역사 기록에 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예요.

태학에서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학생을 가르친 이유는 유교 사상이 임금에 대한 충성, 윗사람에 대한 공경과 예의를 강조하며 신분에 따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이 옳다고 배운 사람들이 관리가 되면, 임금의 권위와 권력이 더욱 높아질 테니까요.

◇우리 역사 최초의 도서관은 '경당'

고구려 수도에 태학이 세워진 후, 태학에 입학할 수 없는 평민 출신 젊은이들 사이에는 '경당(扄堂)'이라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유행하였다고 해요. 경당은 평민 자녀에게 글과 활쏘기를 가르치는 민간 교육기관이었어요. 중국 역사책인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는 '경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고구려에는 책을 사랑하는 풍속이 있다. 가난하여 천한 일에 종사하는 집에 이르기까지 서로 절약하여 각기 네거리에 큰 집을 짓고, 이를 경당이라고 부른다. 혼인하기 전의 자제들이 밤낮으로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활쏘기를 익힌다."

경당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도읍지를 옮긴 장수왕 때 세워졌다는 주장이 있지만,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역사 기록을 미루어 볼 때, 경당은 글과 활쏘기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인 동시에 개인이 구하기 어려운 책을 한곳에 모아놓고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한 도서관 역할도 겸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즉, 경당은 역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수서원·집현전·규장각으로 이어진 도서관

 /그림=이창우고려는 958년 과거제도를 처음 실시하였어요. 관리를 임용할 때 무예 실력을 중시했던 삼국시대와 달리 학문이 출중한 사람들을 관리로 임명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글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이 늘면서 삼국시대보다 훨씬 많은 책이 필요해졌지요. 고려 왕실에서도 직접 책을 수집하여 철저하게 관리할 정도였어요. 990년 고려 성종은 서경(西京·오늘날의 평양)에 '수서원(修書院)'을 설치하였는데, 책을 수집하여 정리하고 보관하는 일을 맡았던 곳이에요. 즉 오늘날의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한 곳이지요.

이후 조선시대 초기인 1420년에 세종대왕이 이름만 남아 있던 학문 연구기관인 '집현전(集賢殿)'을 되살렸어요. 집현전에는 귀중한 문헌과 수많은 자료가 정리·보관되었습니다. 궁궐 안의 도서관 역할을 한 셈이지요. 그러나 집현전은 제7대 임금인 세조에 의해 폐지되었고, 여기에 소장되었던 서적은 예문관(藝文館)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다가 1776년 조선 제22대 임금으로 즉위한 정조가 궁궐 뒤뜰 연못가에 멋진 건물을 짓고, 궁궐의 책들과 외국에서 들여온 책들을 정리·보관하게 했어요. 그곳이 바로 '규장각(奎章閣)'이라는 왕실 도서관이랍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도서관에 자주 가나요? 오늘날에는 대부분 마을마다 도서관이 생겨 쉽고 편리하게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즐겨 찾는 도서관에는 어떤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여러분이 이용하는 도서관이 언제 어떻게 문을 열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알아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전덕재 교수(단국대 사학과)·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