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에게 뇌물 줘 청탁하는 '분경'… 고려 말 성행해 조선 초부터 단속
관리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감시… 태종 땐 5촌 밖 친척 私的 방문 처벌
지난 3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을 제정했어요. 이 법안은 법제처의 심의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공포되면 1년 6개월이 지난 뒤 시행될 예정이죠. 김영란법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2012년에 제안한 법률로 정식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에요. 즉, 부정부패를 막아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 국회의원처럼 공공의 일을 맡은 사람이 부정한 청탁이나 돈을 받으면 법에 따라 처벌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를 막기 위한 법이 있었대요.
◇분경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다
조선 태종 때인 1401년에 있었던 일이에요. 사헌부에서 임금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아뢰었지요.
"전하, 김영렬이 이무의 집에 찾아가 분경을 하였사옵니다. 처벌을 내리소서."
"뭐라고? 그 말이 정말이냐?"
"네. 그러하옵니다."
"분경을 법으로 엄히 금하고 있는데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그자를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라."
▲ /그림=이창우
당시 김영렬은 군사에 관한 일을 총괄하던 삼군부의 우두머리 자리에 있었는데,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 즉 태종의 편에 서서 도운 인물이에요. 그 공으로 공신에 올랐죠. 그런데 그가 당시 인사 행정을 담당하던 상서사의 최고 관직 자리에 있던 이무라는 사람을 찾아가 분경을 하여 관직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죠.
분경(奔競)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줄임으로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에요. 즉, 벼슬이나 권세가 높은 관리의 집을 드나들며 벼슬을 얻거나 더 좋은 관직으로 나아가기 위해 뇌물을 바치고 인사 문제를 청탁하는 것을 말하지요.
분경은 이미 권문세족들이 활개를 치던 고려 말에 크게 성행했어요. 권문세족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고려를 침략하고 간섭할 때 지배층으로 등장한 세력이죠. 벼슬이 높고 권세가 있는 집안을 일컫기도 하고요.
권문세족을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한 신진사대부와 고려 말에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면서 성장한 신흥 무인 세력이 중심이 돼 세운 조선은 나라를 세우면서부터 분경을 엄격하게 금지했어요. 정종은 분경을 금지하는 교지를 처음 내렸어요. 실제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이후 등장한 태종은 범위까지 확대해 철저히 실시했어요.
◇분경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관리의 집을 감시하다
▲ /그림=이창우그래서 조선 초기에 분경금지법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대감댁 문 앞에 서 있는 저 사람은 누구지? 대감댁을 호위하는 사람인가?"
"저자는 사헌부에서 보낸 관리야. 대감댁에 분경을 하러 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지."
"만약에 누군가 분경하러 왔다 들킨다면?"
"신분이나 집에 찾아온 까닭은 묻지도 않고 그냥 잡아 가둔대."
나라에서 하급 관리를 시켜 분경을 하지 못하도록 높은 벼슬에 있는 관리의 집에서 지키게 한 것이에요. 정종 때 정해진 분경 금지 교지에는 공신의 경우 사촌 내의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사사로이 사람 만나지 못하게 돼 있어요. 만일 이를 어기면 먼 지방에 귀양 보내거나 벼슬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지요. 태종 때는 관리가 친가·외가의 5촌 밖에 있는 사람을 집에서 사사로이 만나면 신문도 하지 않고 바로 파직하고 귀양 보내도록 하였고요.
◇부패를 저지른 관리의 자손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다
그 뒤, 분경에 대한 기준이나 처벌이 너무 가혹하다 하여 어느 정도 느슨해지긴 했지만, 성종 때 '경국대전'에 법률로 정해져 조선시대 내내 중요한 법이 됐어요. 경국대전에는 분경 금지의 범위가 문무백관을 관리하던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승정원의 문무 담당 두 승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 노비에 대한 관리 및 소송을 관장한 장례원의 판결사 등이었어요. 이들은 친가 8촌 이내 및 처·외가 6촌 이내, 그리고 이웃 사람이 아니면 사사로이 사람을 집에서 만날 수 없었어요. 이를 어기다가 발각되면 그 내용 및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모두 분경으로 간주했으며 곤장 100대와 함께 3000리 밖으로 유배 보내도록 했대요.
그런가 하면 조선에서는 관리가 뇌물을 받거나 횡령을 저지른 죄를 장오죄(贓汚罪) 또는 장죄(贓罪)라 부르며 엄격하게 처벌을 했어요. 뇌물이나 횡령 등 부패한 관리의 명단을 따로 기록해 본인은 물론 아들과 손자까지도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막거나 제한을 뒀고요.
이처럼 조선시대에도 김영란법과 닮은 부정부패 처벌법이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에도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사회적인 큰 문제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함께 생각해봐요]
조선시대에는 부정과 부패를 저지른 관리를 탐관오리라고 부르며 벌을 줬어요. 반대로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이 올곧은 관리를 청백리라 부르며 상을 줬지요. 조선시대에 청백리로 이름난 인물에는 누가 있었는지 알아봅시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임학성 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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