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고려 사람들, 왜 금속활자 만들어 냈을까

bindol 2021. 11. 5. 05:01

나무판에 글자 새겨 찍는 목판인쇄… 쉽게 불타고 제작 시간 오래 걸려
만들어진 판 짜맞추는 활자 제작

고려 말, 외부 침략·반란 일어나자 튼튼한 금속 활자까지 만들게 됐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은 직지심체요절이에요. 지금으로부터 638년 전인 1377년에 펴낸 인쇄물이지요. 그런데 그보다 138년이나 앞서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인쇄물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어요. 1239년에 펴낸 것으로 알려진 '남명천화상송증도가'라는 것이에요. 그동안은 금속활자로 찍은 것을 다시 목판으로 새겨 찍은 것만 전해졌는데 2012년에 또 다른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세상에 알려졌고, 한 학자가 그 책을 연구한 결과 금속활자로 찍은 것이라고 주장한 거예요. 이 주장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물이 직지심체요절에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로 바뀔지도 몰라요. 그런데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체요절과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백운 화상이 엮은 책을 금속활자로

1374년 경기도 여주의 취암사라는 절에서 백운 화상으로 불리던 스님이 77세 나이로 죽음을 맞았어요. 그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덕이 높은 여러 승려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뽑아 책으로 엮었지요. 그 책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에요.

 /그림=이창우

백운 화상을 스승으로 모시던 석찬 스님과 달담 스님이 스승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어요.

"백운 스님은 이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하셨지요."

"그러게요. 우리가 그 뜻과 업적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소?"

"물론입니다. 그래서 백운 스님이 펴내신 책을 금속활자로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백운 스님의 뜻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길이 빛날 것 같습니다."

묘덕이라는 여승이 이 소식을 듣게 됐고요.

"석찬 스님과 달담 스님이 백운 스님이 펴낸 책을 금속활자로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돕고 싶어요."

그러면서 묘덕 스님은 작업에 필요한 물자와 경비를 마련해줬지요. 그 뒤 청주의 흥덕사라는 절에서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자들과 스님이 모여 작업을 벌였고, 1377년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의 금속활자본이 만들어졌어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백운 화상이 부처님과 역대 선종의 조상이 도를 깨치고 선의 요체를 깨달았던 내용을 법어, 대화, 편지 등에서 가려 뽑아 적은 '직지심체요절'이라는 뜻이에요. 백운 화상에서 화상이란 말은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하는 데 힘쓴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요. 직지심체는 사람이 선수행하며 마음을 바르게 볼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된다는 뜻으로, 요절은 중요한 구절이라는 말이에요. 제목이 너무 길어서 '직지심체요절', 이를 더 줄여서 '직지'라고 부르는 것이고요.

◇고려 시대 사람이 금속활자를 만든 이유

 /그림=이창우'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증도가'의 각 구절 끝에 중국 송나라의 남명 법천 스님이 풀이하며 꾸미는 글을 덧붙인 것이에요. 증도가는 중국 당나라의 현각 스님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시처럼 적은 글이고요.

'직지심체요절'과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모두 불교가 크게 번성했고, 인쇄술이 발달했던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에요. 금속활자를 만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고려 시대 초기에는 목판인쇄가 성행했어요. 목판인쇄는 나무판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고 그 표면에 먹물 같은 잉크를 묻혀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질러서 찍어내는 것이에요. 목판인쇄는 목판을 한 번 만들면 여러 장의 인쇄물이나 여러 권의 책을 쉽게 만들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나무판에 글자 하나하나를 가득 새겨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보관도 쉽지 않았고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활판인쇄였어요.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만들어 그 글자 중에 원하는 글자를 골라 판을 만들어 인쇄하는 것이지요. 이때 인쇄를 하기 위해 만든 글자를 '활자', 활자를 짜 맞춘 인쇄판을 '활판'이라고 해요. 활판인쇄는 목판인쇄보다 힘과 시간과 비용이 덜 들면서도 빠르게 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진보한 기술이었어요.

활자는 11세기 무렵에 중국에서 처음 개발됐는데 찰흙으로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찰흙으로 만든 활자는 쉽게 깨지고 판에서 자주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 거의 사용되지 못했어요. 그 뒤 나무로 만든 활자가 나왔지만, 습기에 쉽게 썩거나 갈라지고 여러 차례 인쇄하면 활자가 쉽게 닳는다는 단점이 있었고요.

그즈음, 고려에서는 북방 민족의 잦은 침략과 무신의 난 등으로 궁궐이 자주 불탔죠. 그래서 잘 타지 않는 활자를 만들 궁리를 하다가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 생각을 했죠. 쇠붙이를 녹여 물건을 만드는 금속 기술은 이미 고대로부터 우리 조상이 최고였거든요. 그 결과, 서양보다 훨씬 앞서 금속활자를 만들 수 있었어요.


[함께 생각해봐요]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부터 금관이나 동판에 글자를 새기는 기술이 뛰어났어요. 특히 통일신라에서는 목판 인쇄술이 크게 발달했는데, 이를 잘 증명하는 인쇄물이 있어요. 바로 석가탑에서 발굴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에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어떤 인쇄물이고, 어떤 가치가 있는 유물일까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정병삼 교수(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