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땅에 있는 프랑스 조계지, 일제 지배 안 받는 곳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하기 적합
체계적인 독립운동 가능했던 건 임시정부서 뜻 모았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에요. 1919년 4월 13일 중국 땅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것을 기념해 만든 날이지요(더 정확히는 4월 11일이에요).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로 기능을 수행한 정부를 말해요. 정식 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임시정부를 세운 것은 그 당시에 우리나라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왜 한국 땅에서 세워지지 않고 중국 땅인 상하이에 세워졌을까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1919년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볼까요?
◇3·1운동과 임시정부
우리는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1919년 3월 1일, 손병희, 이승훈, 한용운 등 민족 대표들이 종로 태화관이라는 곳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어요. 지금의 탑골공원인 종로 파고다 공원에서는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나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했고요. 3·1운동이 벌어진 것이에요.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3·1운동의 불길이 거세지자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 /그림=이창우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독립운동을 펼쳐나가야 해.'
'더욱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임시로라도 정부와 같은 조직이 필요해.'
그런 생각들이 모이고 발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상하이 등에 임시정부가 세워졌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1919년 4월 10일 밤에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의 어느 건물에 모였어요. 그들은 모임의 이름을 '임시의정원'이라고 정했어요. 그들은 그곳에서 임시정부를 세우기로 했죠. 그전에 먼저 국가의 이름부터 정하기로 했어요.
"우리나라의 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어떻겠소? 대한제국의 '대한'에, 왕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국'을 붙여서 말이오."
신석우라는 인물이 그런 의견을 내자 여운형이란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또 대한이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으니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흥해봅시다."
이렇게 의견이 오고가다가 결국 대한민국으로 정해졌어요.
◇하나가 된 임시정부
▲ /그림=이창우'제1조: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 공화제로 한다'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 결의에 의해 다스린다' '제3조: 대한민국의 국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모두가 평등하다'….
4월 11일에 위와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10개조의 임시정부 헌법인 임시헌장이 만들어졌고, 임시정부를 이끌 국무원을 뽑아 임시정부의 행정부가 조직됐죠. 4월 13일에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음을 선포하였고요.
상하이 임시정부보다 한 달 정도 먼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국민의회가 세워졌어요. 이후 열흘 정도 늦게 서울에서 전국 13개도 대표들이 구성한 한성 정부가 생겨나자 상하이 임시정부를 비롯해 각각 임시정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의가 이뤄졌어요.
"독립운동이 큰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임시정부가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옳습니다. 하나 된 임시정부를 만듭시다."
◇임시정부를 상하이에 둔 까닭은
그 뒤로 한성 정부와 대한국민의회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합쳐지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는 상하이에 있는 프랑스 조계지에 마련됐고요.
조계지는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영국·프랑스 등 서양 나라에 개방한 항구도시에 있던 외국인 거주 지역을 말해요. 상하이에 있는 프랑스 조계지는 중국의 영토지만, 프랑스 법의 영향을 받아서 일본이 독립운동가들을 함부로 탄압할 수 없는 곳이었어요. 또한 당시 상하이에는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들어서 있어서 우리나라의 현실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도 이로웠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의 훼방과 탄압,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일으킨 중일전쟁 등으로 상하이에서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으로 옮겨 다녀야 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계속 활동했어요.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말이죠.
[함께 생각해봐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그 대표적인 것들을 알아보아요.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박걸순 교수(충북대 사학과) |
'뉴스 속의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 속의 한국사] 정조는 왜 이순신 장군의 책 만들라고 했을까? (0) | 2021.11.05 |
---|---|
[뉴스 속의 한국사] 독도가 우리땅인 것 알려주는 증인 '이사부 장군' (0) | 2021.11.05 |
[뉴스 속의 한국사] 800년간 신라 왕궁 들어섰던 '초승달 모양의 땅' (0) | 2021.11.05 |
고려 사람들, 왜 금속활자 만들어 냈을까 (0) | 2021.11.05 |
조선시대, 부패한 관리는 손자까지 벼슬 못해 (0) | 2021.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