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독도가 우리땅인 것 알려주는 증인 '이사부 장군'

bindol 2021. 11. 5. 05:04

우산국은 독도 포함한 작은 나라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 정복한 사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적혀 있어요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여러 책서도 독도 우리땅이라고 밝혀

최근 일본이 자국의 외교 정책을 담은 보고서인 2015년판 외교청서를 공개했는데, 이를 계기로 또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어요. 또한 일본 아베 정부는 모든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집어넣게 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죠.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떠올라요. 노래 가사 중에 나오는 신라 장군 이사부란 인물에 대해서도요. 이사부가 어떤 인물이었기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걸까요?

◇이사부로 우산국을 공격하게 하라

신라 지증왕 때에 동해 건너 우산국에 사는 사람들이 종종 바다 건너 신라 땅에 와서 말썽을 일으켰어요. 신라 조정에서는 이를 골칫거리로 여기고 그들을 혼내줄 방법을 의논했죠.

"폐하, 얼마 전에 우산국 사람들이 우리 영토에 와서 약탈하고 돌아갔다고 하옵니다."

"우산국? 그곳이 어디요?"

"동해 끝자락에 있는 섬나라입니다."

"그러면 그곳에 군사들을 보내 혼내주면 되지 않소?"

"그곳 사람들이 고집도 세고 워낙 사나워서 항복을 받아내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요? 우리에겐 이사부 장군이 있지 않소."

"그러하옵니다. 지혜롭고 용맹스러운 이사부라면 우산국을 혼내줄 것입니다."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신라에 충성을 바치게 하시오."

◇나무 사자를 배에 싣고 우산국으로

우산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사부는 우산국을 혼내줄 계획을 짰어요. 그리고 군사들을 시켜 나무를 베어 커다란 사자를 조각하게 했죠. 나무 사자들을 완성하자 그 나무 사자들을 여러 배에 나눠 싣고 우산국을 향해 바다를 건너갔어요. 이때가 지증왕 13년인 512년이에요.

 그림=이창우

신라 땅에서 동쪽으로 이틀을 꼬박 항해한 끝에 우산국 해안 가까이에 이르렀어요. 이사부는 배에 실은 나무 사자의 모습을 우산국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말했어요.

"만약에 항복하지 않는다면 우리 배에 싣고 온 사자들을 풀어놓아 너희를 모두 잡아먹게 하겠다."

무시무시한 맹수의 모습을 처음 본 우산국 사람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어요. 안개가 자욱한 날이라 나무 사자가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보였던 거지요. 결국, 우산국 사람들은 이사부 장군이 이끄는 신라군에게 항복하고 말았어요. 그때부터 우산국은 신라의 다스림을 받는 신라의 영토가 됐죠.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와 그에 딸린 섬들을 다스리는 나라였어요. 독도도 울릉도에 딸린 섬이었고요.

◇신라 영토 확장에 앞장선 인물

이사부는 신라 제22대 임금인 지증왕 때부터 제23대 법흥왕 때를 거쳐 제24대 진흥왕 때까지 활동한 인물이에요. 삼국사기에 성은 김씨이며, 내물왕의 4대손으로 태종이라고도 불렸다고 나오는데, 삼국유사에는 이사부를 성은 박씨 이름은 이종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이사부는 505년 실직주의 행정과 군사를 맡아 다스리는 군주가 됐고, 7년 뒤인 512년에 오늘날의 강릉 지방인 아슬라주의 군주로 자리를 옮기며 강원도 동해안 지역을 튼튼하게 방어했어요. 우산국을 공격했을 때는 지증왕 13년인 512년이었고요. 당시 신라는 나라의 체제를 정비하고 국력을 키워 영토를 넓혀가며 고구려·백제와 맞서던 시기였죠. 실직주와 아슬라주는 지금의 삼척과 강릉 지방으로 북으로는 고구려, 동해로는 일본과 맞서야 하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고요.

그 뒤 이사부는 진흥왕 2년인 541년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병부령에 임명됐고, 그때부터 약 20년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신라가 한반도에서 세력을 넓히는 데 큰 업적을 이뤘어요.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인 기록들

이사부 장군은 550년에 한강 유역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는 틈을 타서 도살성과 금현성을 공격해 한강 유역을 신라가 차지하게 했죠. 562년에는 화랑 사다함과 함께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신라가 낙동강 하류 지역을 완전히 손에 넣게 했어요. 그뿐 아니라 진흥왕에게 역사를 편찬할 것을 건의해 신라가 국가로서 당당함으로 널리 알리는 데도 힘을 썼어요. 왕은 이사부의 말에 따라 거칠부 등에게 명해 '국사'라는 역사책을 편찬하게 했죠.

물론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인 근거가 이사부가 등장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에 실린 지리지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을 비롯해 수두룩하죠. 그뿐만 아니라 1877년 당시 일본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의 지시문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고 나와 있어요.

1900년 대한제국 칙령에도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해 우리 영토임을 확실히 해놓았어요.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1905년에 독도를 강제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고 나서, 자기네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랍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독도 하면 떠오르는 또 한 명의 인물로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안용복을 꼽을 수 있어요. 그는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히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었어요.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안용복은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그의 활동과 업적에 대해 알아보세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손승철 교수(강원대 사학과) |